도서관교회
    LIBRARY CHURCH
    1967년부터 이어온 믿음 · 한국교회와 나누는 기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성남노회
    도서관교회

    도서관교회의 자산을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드리려 합니다.

    한 교회가 지켜온 터전을, 여러 교회가 함께 섬기는 선교의 자리로.
    선대 목사님의 평생의 기도를 이어받아, 2016년부터 나누어 온 비전을 실천합니다.

    도서관교회와 호도애 도서관의 모습, 예배와 교육 사역을 담은 기록
    공시지가50억 원 이상
    감정가90억 원 이상
    우리가 지키려는 가치교회 연합과 공공성

    2025년 12월 기준 평가 금액

    이 길을 한국교회와 나누는 이유

    공공의 자산으로 드리는 길에서,
    가슴 아픈 시험대에 섰습니다.

    설립 목사님의 소천 이후, 자산의 성격과 재단의 운영 방식에 대한 가족(행정적 상속인)의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교회와 성남노회는 만남과 중재를 이어왔습니다. 이제 그 과정과 저희의 결단을 나누며, 관계의 회복과 공공의 선교를 위한 기도와 지혜를 구합니다.

    “땅과 거기에 충만한 것과 세계와 그 가운데에 사는 자들은 다 여호와의 것이로다”시편 24편 1절
    공공 자산을 위한 선언

    드리는 뜻이,
    운영의 원칙이 되도록.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성남노회 소속 도서관교회는 선대 목사이신 고 장웅일 목사님의 유지를 받들어, 당회의 논의와 공동의회의 결의를 거쳤습니다. 교회의 자산을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드리고자 선교재단법인 설립을 결의하고 추진하고 있습니다.

    당회는 2026년 1월 28일, 공동의회는 2월 8일에 이 뜻을 의결했습니다. 교회가 바라는 것은 단순한 명의 변경을 넘어섭니다. 여러 교회가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고, 교육과 문화, 복지와 선교를 이어가는 공동의 터전을 만드는 일입니다.

    도서관교회가 운영의 의결권을 가지는 법인이 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교회는 설립에 필요한 행정 절차에 협력합니다. 이후에는 성남노회의 추천을 통해 구성된 독립된 이사회가 법인을 운영하도록 정관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도서관교회와 장대은 목사는 법인 운영과 관련한 어떠한 역할도 맡지 않겠습니다. 독립된 법인으로 세워지는 일에 협력하겠습니다.

    01

    자산은 공공의 선교를 위해

    토지와 건물을 선교재단법인에 출연하여, 도서관교회 한 곳을 넘어 한국교회가 함께 섬기는 선교의 터전으로 삼고자 합니다. 이 비전은 2대 담임목사인 장대은 목사의 뜻이기 이전에, 선대 목사님의 평생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2016년 안식년 이후, 선대 목사님과 2대 담임목사가 뜻을 함께하며 오랫동안 선포해 온 비전입니다.

    02

    재단법인 이사 추천은 교회 연합을 통해

    성남노회의 추천을 받아 선교의 뜻과 책임을 가진 이사장과 이사를 세우고자 합니다. 추천과 선임 절차는 정관에 명확히 담겠습니다.

    03

    설립 목회자의 가족과 담임목사의 임원 참여를 배제합니다

    설립 목회자의 가족과 2대 담임목사가 법인의 의결권을 주도하지 않도록, 임원 불참 원칙을 정관에 담고자 합니다. 장대은 목사와 도서관교회 당회는 이사장이나 이사의 직무를 맡지 않겠습니다. 설립 후 법인의 인사와 재정, 의사결정에도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04

    설립 후에는 독립된 이사회가 운영합니다

    교회의 관여는 법인 설립에 필요한 행정 협력까지입니다. 설립 이후에는 독립된 이사회가 정관에 따라 운영하도록 구조를 마련하겠습니다.

    00 · PROLOGUE · 전제

    모든 이야기에 앞서
    먼저 드려야 할 고백이 있습니다.

    “이 모든 문제의 원인은,
    담임목사인 저에게 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를 풀어가기 이전에, 가장 먼저 분명히 고백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이 모든 사태의 근본 원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담임목사인 저 자신이라는 사실입니다. 교회의 부끄러운 상황을 드러내어 놓는 자리에서, 문제의 원인을 제공한 담임목사의 직무유기에 대해 먼저 고백하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합니다.

    저는 2006년 도서관교회에 부임했습니다. 저는 선대 목사님의 삼남으로, 흔히 말하는 세습의 과정을 통해 도서관교회(구 한양교회) 2대 목사로 부임했습니다. 이후 20년 동안 사역하며 현재의 문제 상황의 원인 된 교회의 명의 이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기회를 살리지 않았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한 절차를 밟지 않은 채, 20년 동안 그저 시간이 흘러가도록 두었습니다.

    “20년의 시간이 있었지만, 저는 그 시간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1993년, 교회가 분당 야탑 유치원 부지와 건물을 분양받을 시 교회 명의로 받을 수 없었기에 당시 담임목사이신 원로목사님 명의로 받았습니다.

    2006년 12월, 지금은 소천하신 원로목사님께서는 본 교회 부지와 건물이 교회 자산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개인 명의에서 교회 명의로 변경하기 위한 공동의회를 제안하셨고, 2대 담임목사인 제가 사회를 보는 가운데 명의 변경 안건이 통과되었습니다.

    당시 그 자리에는 원로목사님의 첫째 아들인 장남 집사(당시 도서관교회 교인)도 함께 참석하여 찬성했습니다.참석자 모두가 동의한 가운데 의결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그 의결은 행정으로 이어지지 못했습니다. 당시 상담했던 법무사로부터 “명의신탁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과징금과 별도의 법적 절차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담임목사인 저와 장로님은 전해 들었고, 그 문제 해결을 차일피일 미루고 외면한 가운데 20년의 시간이 흘렀고 원로 목사님이신 아버지는 소천하셨습니다.

    명의 변경에 대한 의결은 분명히 있었습니다.당시 참석한 모두가 고 장웅일 목사님의 개인 명의로 남아 있던 교회 부지와 건물이 도서관교회의 공공 자산임을 알고 있었다는 뜻입니다.그러나 행동이 따르지 않았습니다.교회와 노회 앞에서, 무엇보다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일찍 문제의 심각성을 직시했더라면,
    오늘 마주한 이 모든 다툼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제가 단 한 번이라도 이 문제를 정면으로 직시했었다면, 형제들 사이의 의견 대립도, 불필요한 갈등도, 노회에 지운 무거운 부담도 발생하지 않았을 일입니다.

    그 책임은 다른 누구의 몫도 아닌, 담임목사인 제 자신의 몫임을 고백합니다. 형제들의 마음이 움직인 데도, 가족이 흔들린 데도, 그 시작에는 문제 해결을 미루고 침묵한 직무유기가 있었습니다.

    “이미 발생한 아픔을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이 더 큰 죄악으로 번지지 않게
    기도하며 「수습」할 뿐입니다.”

    이후의 모든 대처를 저는 결코 「문제 해결」이라 부를 수 없음을 압니다. 이미 발생한 아픔 — 형제들과의 다툼, 교회의 흔들림 — 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그것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실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하나입니다. 이미 발생한 아픔이 서로를 더 깊이 해치고, 더 큰 죄를 짓는 상황으로 번지지 않도록 막는 것입니다. 더 큰 죄악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저의 말과 행동부터 돌아보며 기도하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가지만은 잃지 않으려 합니다.

    저의 부족함이 만든 이 아픈 자리에서, 앞으로 이어질 모든 대처 과정에 있어서 한 가지 기준만은 잃지 않으려 합니다. 그것은 담임목사 개인의 욕심도 아니고, 상속인 중 한 사람으로서의 사적인 마음도 아닙니다.

    목회자로 부르신 그분 앞에서, 저는 매일 두 가지 질문을 마음에 두고 묻고 있습니다.

    기도 가운데 묻는 두 가지 질문
    “하나님의 뜻은 무엇입니까?”“60년의 시간 동안 하나님이 지켜오신 도서관교회 자산을 통해 이루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무엇입니까?”

    이 두 질문 앞에 저는 매일 다시 섭니다. 그리고 그 응답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가는 길에서도,공적 교회로서의 정체성과 본질을 지키기 위해 힘쓰겠습니다.

    도서관교회 2대 목사인 제가
    새롭게 만든 뜻이나 결단이 아니라,
    선대 목사님의 기도를 이어받았습니다.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교회 자산을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드리려는 뜻은, 도서관교회 2대 목사인 저의 뜻이기 이전에 선대 목사이신 고 장웅일 목사님의 뜻입니다. 저는 그 뜻을 이어받았을 뿐입니다. 아버지는 교회 자산이 하나님의 것이며, 한국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고 말씀해 오셨습니다.

    아버지께서 소천하시기 전에 모든 행정 절차가 정리되었다면 가장 좋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인 문제를 풀지 못한 채 시간이 흘렀습니다. 저는 2016년 안식년 이후 이 비전을 계속 선포했지만, 그 뜻을 명의 정리와 실제 절차로 끝까지 이어가지 못했습니다.

    가족들은 부모님이 일구신 교회의 터전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노회를 목회자들의 정치적 이해가 작용할 수 있는 조직으로 바라보며, 노회 중심으로 재단이 세워지면 아버지의 뜻이 훼손될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가장 가까이에서 알고 지킬 사람은 자녀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자산을 자녀들이 직접 아버지의 선교 뜻을 이어가는 터전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저는 지금도 가족들이 돈에 대한 욕심보다, 선대 목사이신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려는 순수한 마음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고 믿어 의심하지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욕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족들의 마음에는아버지의 뜻을 지키려는 순수한 마음이 더 크다고 믿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생겨난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다만 부모님의 뜻을 사랑하는 마음과 교회 자산의 성격을 판단하는 기준은 함께 살펴야 합니다. 교회가 작다는 이유로 그 자산이 한 개인이나 가정의 자산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교회는 이 부지와 건물을 공교회의 공적 자산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교회의 입장에서, 명의신탁된 재산에 대한 의결권을 선대 목사님의 자녀라는 이유만으로 자녀들의 몫으로 볼 수는 없다는 뜻을 여러 차례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자산의 성격과 의결의 주체에 대한 이해 차이를 충분히 좁히지 못했습니다. 가족의 선교 뜻을 존중하는 마음과 공교회의 자산을 지켜야 하는 책임을 함께 전하는 일이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교회 연합을 통해 그 뜻을 더 넓게 이어가기를 바랐습니다. 가족들과 같은 아버지를 기억하면서도, 뜻을 지키는 방법에서는 차이가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가볍게 여기거나 가족들의 우려를 욕심으로만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의 출발점에는 2대 담임목사인 제가 있습니다.원로목사님이 살아 계실 때 명의와 행정 문제를 정리했어야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한 책임을 다시 한번 분명히 고백합니다. 비전을 말하는 것과 그 비전이 이어질 길을 준비하는 것은 함께 이루어져야 했습니다. 저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드리는 현 상황에 대한 모든 이야기는, 이 고백을 전제로 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인지하게 될 모든 상황 가운데 지적과 비난의 화살은 저를 향해야 함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도서관교회 담임
    장 대 은 목사
    2026년 4월의 고백 · 10월 보완
    01
    CHAPTER ONE · 시작

    1967년 말죽거리에서 시작된
    한 목회자의 60년 여정

    故 장웅일 원로 목사님이 네 명과 함께 시작한 (구)선광교회를 시작으로 은퇴하시기까지의 40년 개척과 목양, 그리고 도서관교회로 이어져 온 그 후 20년 사역 이야기

    도서관교회의 뿌리는 1967년, 故 장웅일 원로 목사님이 비포장 벽촌이던 말죽거리(현 역삼동·서초동) 초가 한 칸에서 단 네 명과 드린 첫 개척 예배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선광교회 → 서초동교회 → 반포 한양교회 → 분당한양교회 → 도서관교회」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한 목회자의 씨 뿌림으로 60년 동안 한길로 걸어온 같은 신앙공동체입니다.

    장웅일 목사님은 1933년 경북 영일군(현 포항시) 불교 가문에서 7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나, 초등학교 5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인도로 홀로 교회에 출석하시며 가문의 첫 복음의 씨앗이 되셨습니다. 21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어머니와 동생들을 부양하던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신앙을 잃지 않으셨고, 냉동 창고에 갇혀 동사할 위기에서 베드로의 옥문처럼 쇠문이 저절로 열리는 기적을 경험하신 후, 동해 수평선 위 큰 십자가의 환상을 통해 복음 전도자로 부름받으셨습니다.

    1960년 무일푼으로 서울로 상경해 벧엘학원에서 수학하시고, 삼각산·관악산에서 70일 철야·금식 기도로 사역을 준비하신 후, 1961년 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셨습니다(1966년 졸업). 신학생 시절 5년간 우범 청소년 선도 기관 「희망소년관」 종교 담당자와 야간학교 교사로 헌신하셨고, 40일 금식 중 받으신 「어떠한 악한 세력도 너를 해치지 못하리라」는 말씀을 평생의 약속으로 삼으셨습니다.

    1967 — 1978

    선광교회

    말죽거리 초가 한 칸, 첫 주일 4명. 외부 지원 없이 개척. 서초동 30평 벽돌 예배당을 직접 건축. 군사시설 보호구역 지정으로 철거.

    1978 — 1986

    서초동교회

    선광교회 자리를 떠나 1978년 서초동 상가에 자리를 잡고 부흥해감. 1980년 집단 분열의 아픔. 모세처럼 강단에 엎드려 목양의 목회 사역에 헌신하심.

    1986 — 1994

    반포 한양교회

    반포동 프라자빌딩 이전. 강해설교집 『꿀송이』 집필 시작. 신약 전권 설교집과 성경공부 교재 발간을 마무리한 후 분당 종교 부지 마련의 과정에서 교회 재정의 30%를 사기 맞는 시련을 겪음.

    1994 — 2006

    분당한양교회

    기적적 수의계약으로 야탑동 대지 250평·건평 106평 유치원 부지를 분양받음. 부족한 일부 금액은 장웅일 목사님의 사재 목동아파트 매도 후 차용하여 부지 자금에 보탬.

    2006 — 현재

    도서관교회

    장대은 목사 부임 이후, 1층을 지역 도서관으로 개방. 작은 교회이지만 도서관 사역, 교회 교육과 인문학 교육, 독서·글쓰기 교육에 집중. 부임 첫해 선포한 한국 교회의 교육관(도서관교회)이요 교육목사(장대은 목사)의 비전을 20년간 바라보며 책·교육·복음의 콜라보 사역을 진행함. (한양교회에서 도서관교회로 교회명을 변경한 것은 2016년 성남노회 가을 노회이지만, 이해를 돕기 위해 장대은 목사가 부임한 2006년 이후 교회 명은 「도서관교회」로 통일합니다.)

    2007 — 2020

    원로목사님의 중국 선교

    장웅일 원로목사님은 은퇴 후 70대에 다시 대륙으로. 13년간 수만 명에게 노방전도. 모든 비용을 본인이 소무역으로 충당.

    1970년대 초 선광교회 앞에서 장웅일 목사, 권영옥 사모
    1970년대 초 선광교회 앞에서
    장웅일 목사, 권영옥 사모
    2024년 도서관교회 앞에서 장웅일 목사, 권영옥 사모와 함께 한 장대은 목사
    2024년 도서관교회 앞에서
    장웅일 목사, 권영옥 사모와 함께 한 장대은 목사

    선광교회(1967–1978) — 갓 신학교를 졸업한 장웅일 목사님은 사모님과 함께 외부의 어떤 금전적 지원도 없이 말죽거리 초가 한 칸을 세내어 첫 개척 예배를 드렸습니다. 첫 주일 참석자는 단 네 명. 그러나 밤낮 가리지 않는 기도로 교회를 일구셨고, 서초동에 대지를 매입해 30평 벽돌 예배당을 직접 건축하셨습니다. 교회 부지가 군사시설 보호구역으로 묶여 철거 명령을 받는 시련을 겪습니다.

    서초동교회(1978–1986) — 1980년 영향력 있던 제직과 교인들의 집단 이탈이라는 분열의 아픔이 닥쳤습니다. 그러나 목사님은 인간적 방법으로 대응하지 않고 모세처럼 잠잠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강단의 기도로 끝까지 양떼를 지키셨습니다.

    반포 한양교회(1986–1994) — 반포동 프라자빌딩으로 이전하며 「한양교회」로 개명. 이 시기 문서 선교에 뜻을 두고, 훗날 중국 지하교회까지 전해진 강해설교집 『꿀송이』 집필을 시작하셨습니다. 분당 신도시 종교 부지를 마련하기 위해 반포 예배당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다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강하고 담대하라, 내가 너를 대신하여 싸워 주리라」는 음성을 붙드셨습니다.

    분당한양교회(1994–2006) — 1994년 기적적인 수의계약으로 현재의 분당구 야탑동 자리(대지 250평, 건평 106평)를 분양받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목사님 내외분은 사택으로 사용 중이던 사재 목동아파트를 매도해 그 일부 금액을 부지 분양자금에 보태셨습니다. 2006년 40년 목양을 마치고 원로목사로 추대되시기까지, 한양교회의 결실이 오늘의 「도서관교회」로 이어졌습니다.

    이 건물은 교회의 것이며, 한국 교회의 공공자산이 되어야 한다.— 故 장웅일 원로 목사 인터뷰 영상 中

    문서 선교와 중국 사역 — 23년에 걸쳐 신약 강해 설교집 『꿀송이』(전 12권, 4,460면)를 비롯해 총 29권, 약 6,000여 면의 저서를 집필하셨습니다. 1991년에는 공관복음·사도행전·요한계시록 강해를 위해 이스라엘과 유럽 10여 개국을 직접 탐방하셨습니다. 은퇴 후인 2007년부터 13년간, 70대의 나이로 다시 중국 대륙에 들어가 대련·연길·용정·길림·북경·하얼빈·단동을 오가며 수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셨고, 모퉁이돌선교회를 통해 받은 2,000여 권의 중국어 성경을 직접 전달하셨습니다. 모든 선교비는 평택·중국 간 여객선에서 50kg 곡물 보따리를 나르는 소무역으로 본인이 직접 충당하셨습니다.

    도서관교회로의 결실 — 2006년 장대은 목사가 부임하면서 분당한양교회는 1층을 지역사회에 열린 도서관으로 개방하며 「도서관교회」로 새 이름을 얻었습니다. 한때 「전국 1등 도서관 사역」으로 알려질 만큼, 책과 교육과 복음이 만나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부임할 당시 교인 수는 원로목사 부부, 형님 부부, 담임 목사 부부를 포함 10명. 처음부터 「수」로 평가되지 않는 교회를 지향했고, 장대은 목사는 자신을 부르신 부르심의 과정과 하나님의 뜻, 마음의 소원이 분명했기에 서울·성남/분당·용인 지역에서 교회를 출석 중인 크리스천 개인과 가정은 20년간 한 가정도 교인으로 받지 않고 주중 사역을 하며, 분당에서의 사역 기간에는 평균 10명 안팎이 주일 예배에 함께했습니다. 이어질 설명에서 유추할 수 있듯, 도서관교회가 진행하는 기독교교육 사역의 특성상 자녀교육의 필요에 의해 도서관교회에 등록하고자 하는 크리스천 가정들은 1년에 수십 가정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20년 동안 먼 지역에서 이사를 오거나, 오랜 기간 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은 가나안 교인, 넌크리스천으로 등록하기를 원하는 가정 외에는 20년간 단 한 가정도 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등록을 원하는 이들을 그들에게 도움이 될 교회로 연결시켜주고 주중교회학교 교인으로 함께 사역했습니다. 이곳에서 배운 것을 지교회로 가서 섬기라 말하며 그 사역을 20년간 지원했습니다. 이렇듯, 2대 목회자를 거치는 60년 동안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 교단 안에서 교회는 세워졌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도서관교회는 행정상 목사님 개인 이름으로 등기되었지만, 자필 회계장부와 영상·일대기 기록, 생전 수많은 녹취를 통해「개인 재산이 아닌 교회 자산」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모든 헌금·관리비·수리비는 교회 계좌에서 나갔고, 성남시청과 분당구청은 매년 두 차례 종교 용도 사용 여부를 확인했으며, 故 장웅일 목사님은 2016년 2대 목사인 아들 장대은 목사를 불러 “네가 은퇴할 때 교회 모든 자산은 총회나 노회에 기부하는 것으로 하는 것이 좋겠다” 말씀하셨고, 2대 목사인 장대은 목사도 그 뜻에 100% 동의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1967년 말죽거리 초가의 네 명에서 시작해, 선광·서초동·한양·분당한양을 거쳐 도서관교회에 이르기까지 — 60년의 한 길이었습니다. 故 장웅일 원로 목사님은 2025년 6월 20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시기까지 그 한 자리를 지키셨고, 남기신 한 문장은 지금도 도서관교회의 진실로 그 자리에 서 있습니다.

    故 장웅일 목사님이 도서관교회 예배 시간에 부르신 특송 중 발췌
    02
    CHAPTER TWO · 부르심

    9년 간의 기독교 대안학교 운영/사역자에서
    도서관교회(구 한양교회)의 담임이 되기까지

    2006년, 73세까지 사역하신 아버지의 자리를 잇기 위한 부름

    장대은 목사(현재 54세)는 본래 도서관교회(구 한양교회)의 담임이 되려 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8년간의 전도사 사역을 끝으로 그는 대안학교의 설립 멤버이자 운영진(꿈의학교와 사사학교), 기독교교육 사역자로 9년간 사역하였습니다. 교육을 기획하고 전국 교회를 다니며 강의를 하며, 청소년의 인생설계 교육과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기독교교육으로서의 트리비움 교육에 헌신해 온 사람이었습니다.

    장웅일 원로 목사님은 이미 은퇴할 나이가 지나셨지만 후임자를 구하지 못해 73세까지 3년을 더 사역하셨습니다. 셋째 아들이 목사였지만 교회 담임목회자로서의 비전이 없음을 오랜 기간 강조해왔기에 후임 의사를 물어보신 적도 없습니다. 노회에서는 당회장을 파송하고 은퇴를 한참 지나서도 노령의 나이에 담임목사직을 수행하고 계셨지만, 교회의 환경은 후임자가 오기 어려운 자리였습니다. 적은 교인 수, 교회 2층을 사택으로 사용 중이신 원로 목사님, 미해결된 행정 문제들로 후임 청빙을 여러 번 시도했지만 오겠다는 사역자가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성남노회는 도서관교회 장로인 이상훈 장로님을 통해 셋째 아들인 장대은 목사와의 만남을 요청하셨습니다. 「아버지가 난처한 상황 가운데 있는데, 아들이 목사라면 그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해야 하지 않습니까?」 당시 성남노회장이신 김창기 목사님(동원교회)께서 2005년 가을, 장대은 목사와의 첫 만남에서 하신 말씀입니다. 장대은 목사는 그 당시 아내의 스승과 함께 대전과 금산에 위치한 기독교 대안학교인 「사사학교」를 설립하고 사역 중이었고, 기독교연구소 책임자로 사역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전국 교회를 다니며 강의 사역을 하던 중이었습니다.

    저는 담임목사로 부르심을 받았다 생각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그것을 위해 기도로 준비되지도 않았고, 감당할 수도 없으며, 그 자리를 맡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장대은 목사, 첫 만남에서 (2005년 가을)

    아버지가 개척한 교회의 상황을 나몰라라 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기도 가운데 표면적으로 도서관교회에 부임하기로 결정합니다. 「표면적」이라 이야기하는 것은, 노회 선배·동료 목사들에게 단 한 번도 이야기한 적 없지만 솔직히 2006년 4월 아버지의 은퇴 예배 시 도서관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받으며 위임목사가 된 장대은 목사는 도서관교회(구 한양교회) 측과 「아버지가 곤란한 상황에 있기에 2대 목사로 위임받겠지만, 2006년 말까지 교회 출석을 하지 않고 기도 가운데 내가 담임목회자로서의 부르심에 순종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찾는 시간을 갖겠다. 연말이 되어서도 하나님의 소명을 스스로 확인하지 못한다면 행정적으로도 사임하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기독교학교를 사임 후 위임식에 참여한 것입니다. 솔직히 위임식이 있는 자리에 서기까지 위임이라고 하는 예식의 진정한 의미를 한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엇습니다. 목사안수를 받기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유무상통하는 공동체 생활을 하며 대안교육에만 집중했기 때문이라 스스로 이야기 하지만, 너무도 어리석은 목회자일 뿐이었습니다. 위임 후 2주 뒤 191일 동안 4개 대륙 18개국 기독교 공동체와 기독교 학교를 탐방하는 세계일주 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위임을 받아놓고 교회 담임으로 부임할지 말지를 정하기 위한 6개월간의 여행을 떠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펼쳐진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지금의 이 글로 전해 받으시는 분들은 이해하실 수 없고 장대은 목사를 비난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때의 상황은 그러했고, 당시 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이라 고민가운데 결정한 일들이었습니다.

    요약하자면, 담임목사로서의 마음을 정하지 못한 상태에서 곤란한 상황 가운데 있는 도서관교회(구 한양교회)와 아버지를 도와 행정적으로는 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6개월간의 시간을 두고 장대은 목사는 목회의 부르심에 대한 기도와 고민의 시간을 갖고, 교회는 교회가 마주한 문제 해결을 위해 함께 시간을 마련하기 위한 행정적인 「조치」를 했다는 것이 실제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결혼한 지 5년 차, 딸은 4살, 새로운 교회 담임으로 — 그것도 위임목사로 부임한 사람이 홀로 세계여행을 떠났다는 것은 가장으로서나 목사로서 결코 쉽지 않은 선택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너무나도 큰 고민 가운데 힘들어하는 남편의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던 장대은 목사의 아내(이윤미 사모)는 있던 자리를 떠나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을 적극 추천해 주었습니다.

    191일간의 여행을 마치고 11월에 귀국한 장대은 목사는, 담임목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목회 계획을 정확하게 그리지는 못한 상황이었지만,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받아들이고 기쁘게 순종할 마음을 여행 기간 허락하셨습니다. 그 이후 20년간은 한순간도 억지로 하는 마음 없이 기쁨으로 주어진 사역을 감당케 하셨습니다. 당시, 담임목사로 사역을 하기로 결정했지만 담임 목사라면 누구나 다 하는 일이라 할지라도 준비 없이 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장대은 목사는, 세계여행에서 돌아와 참여한 첫 예배에서 다음과 같이 선포했습니다.

    도서관교회는 타 교회를 다니다 교회를 옮기는 새 교인의 등록은 받지 않겠습니다. 수평이동을 반대해서가 아닙니다. 수평 이동이 필요한 수많은 성도들을 보아 알고 있습니다. 다만, 제가 준비되지 않은 영역에서 생각 없이 사역하기보다, 한국교회를 지원하는 사역을 주중 사역으로 진행하는 것이 제가 목회자로서 준비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국 교회의 교육목사가 되고, 도서관교회는 한국 교회의 교육 사역의 마중물이 되는 일에 집중하겠습니다.— 장대은 목사, 선언 (2006년 11월)

    그 약속은 20년간 지켜졌습니다. 교회는 평균 10명 안팎으로 유지되었고, 수백, 수천가정이 도움을 받기 위해 찾아왔지만 한 가정도, 한명도 전도라는 명목으로 교회에 등록시키지 않았습니다. 예수 믿지 않던 가정들이 등록 후 몇 년씩 출석하기도 했지만, 핵심 사역은 주중(월–금)에 진행되었습니다. 주중에는 매일 수백명이 오가는 교회, 주일에는 조용히 예배드리고 안식을 취하는 교회, 그곳이 도서관교회였습니다. 이것이 도서관교회가 걸어온 사역의 모습입니다. 가족들은 전통적인 담임목회와 다른 이 형태를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잇는 선교재단을 자녀들이 중심이 되어 세우고, 북한 선교 등을 이어가야 한다는 의견도 전했습니다. 그 차이를 듣는 일은 제게 아팠습니다. 그러나 서로 다른 이해를 곧바로 누군가의 악의로 설명하기보다, 교회가 어떤 사역을 해왔는지 차분히 나누고자 합니다.

    2007 — 2016 · 지역 주민들과 교회 대상으로 한 도서관 중심 사역 / 주중 교회학교 사역

    주일은 비웠고, 주중은 지역 아이들과 가정들로 가득했습니다

    2007–2016 도서관교회 주중 교회학교와 호도애 도서관 사역 사진들2007–2016 도서관교회 주중 교회학교, 호도애 도서관, 여름 캠프 등 사역 현장 모음

    도서관교회(구 한양교회)는 「주일 성도는 받지 않는다」는 약속을 공적으로 선포한 교회였습니다. 그 결과 주변 7–8개 교회와 「경쟁」이 아닌 「자연스러운 소통의 공동체」가 형성되었고, 주중(월–금) 교회학교는 1회성 행사가 아니라 매주 반복되는 정규 커리큘럼으로 10년간 운영되었습니다. 매주 200명이 넘는 아이들과 부모들이 매일·매주 도서관교회 주중 교회학교에 참여했습니다.

    2015년에는 교회가 위치한 단지 내 초등학교 전교생 약 610명 중 약 580명이 도서관교회 「호도애 도서관」 회원(누적 회원 3,000명)으로 가입하여, 매일 교회를 드나드는 아이들의 공동체였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1998–2006년까지 「꿈의학교」와 「사사학교」를 설립한 기독교 공동체의 운영 주체로, 유무상통(有無相通)하는 공동체를 추구하며 살아온 사역자였습니다. 그 삶의 결을 그대로 이어, 지역교회 담임목회자로 부임한 뒤에도 도서관교회를 「지역 공동체」로 세웠고, 주변 교회 목회자 자녀들과 성도들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있는 주중 교회학교를 10년간 진행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분명합니다. 교인 10명의 작은 교회가 20년 동안 「주일 성도」를 받지 않고, 주중에 크리스천과 넌크리스천이 함께하는 사역에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도서관교회는 프로그램을 통해 주변 교회의 성도와 아이들을 「전도」하는 형태를 선택하지 않았고, 그래서 주변 7–8개 교회 목회자들은 자신의 자녀와 성도가 도서관교회 주중 교회학교에 참여하는 것을 흔쾌히 허락해 주었습니다. 자랑이 아니라, 도서관교회가 어떤 교회였는지를 보여주는 풍경입니다.

    한두 번 진행하는 컨퍼런스는 지양했습니다. 매주 모임이 진행되어 수백 차례 모임을 갖는 형태의 교육을 진행하였고, 주중에 이곳에서 배우고 익힌 것들을 주일에는 자신들이 속한 교회에 가서 적용하는 교회들이 늘어갔습니다. 매년 수십 가정이 자신의 자녀 교육에 도움이 된다는 이유만 가지고도 교회 등록의 문을 두드렸지만, 그런 가정들은 20년 동안 단 한 가정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2017 — 2026 · 집필 사역과 아카데미 중심의 전국 교회/기독교 가정 지원 교육 사역

    도서관을 통한 지역 교육·문화 사역은 최소화하고,
    한국 교회와 가정을 지원하는 교육/집필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2017–2026 도서관교회 아카데미 주중 교육 사역 사진들

    아카데미 사역 ─ 한국 교회와 기독교 가정을 지원하는 주중 교육의 장

    2016년의 안식년을 마치고 2017년도부터 진행된 교회 사역은, 도서관을 통한 지역 교육·문화 사역은 이미 지역교회들이 잘 감당하고 있다 판단하여 최소한으로만 진행하고, 90% 이상의 에너지를 한국 교회 목회자, 사역자, 기독교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을 지원하는 아카데미 사역에 집중했습니다. 도서관교회 작은 공간에서는 매주 수십 가정의 부모와 아이들이 끊이지 않고 모여 독서·트리비움·인생설계·말씀 훈련을 받았고, 이곳에서 훈련받은 분들은 자신이 속한 교회와 가정에서 그 교육을 다시 풀어내는 「마중물」이 되었습니다.

    2017년 이후로 지금까지의 기간은 그동안 도서관교회와 장대은 목사가 준비해 온 장점을 살려 사역의 노하우를 책으로 집필해 나누고, 전국 교회 목회자와 크리스천을 위한 콘텐츠를 보급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지난 20년간 도서관교회 주중 사역으로 다듬어 온 콘텐츠들이 한국 교회의 주일학교, 주중 교회학교, 기독교 가정의 신앙교육으로 자리잡아가는 일에 헌신하겠다는 기도의 제목을 정하고, 안식년 때 장대은 목사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신 일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제가 도서관교회의 주중 사역을 설명하고 사진을 함께 올린 것은 사역을 자랑하기 위함이 결코 아닙니다. 자랑할 것도 없습니다. 모든 교회들이 감당하는 수많은 사역 가운데 그 일부를 도서관교회는 조금 더 집중해서 감당할 뿐임을 한순간도 잊지 않고 사역에 임해 왔습니다.

    * 성남노회와의 관계

    장대은 목사는 사역 초기에는 노회와 거리를 두려 했습니다. 「노회는 정치 집단이다」라는 막연한 인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7년이 지난 시점에서 노회 선배 목사님들의 권유로 정기 노회에는 참여하는 정도의 관계를 맺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고 노회 활동이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누구나 다 하는 것처럼 정기 시찰, 정기 노회에 참여하는 정도였습니다. 2013년부터는 노회 목사부부합창단에서 사역하며 노회 선배 목사님들과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고, 2024–2025년 회기에는 성남노회 노회장을 맡기까지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막연하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던 노회에서 부정적 의미의 「정치」가 아닌 「연합과 동역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013 · 성남노회 선배 목사님 부부의 도서관교회 방문

    멀리 있던 노회, 있는 그대로 받아주신 선배 목사님들

    2013년, 성남노회 선배 목사님 부부들이 도서관교회를 방문하여 사역 설명을 들으신 후 교회 계단에서 함께 찍은 단체 사진

    2013년, 도서관교회를 찾아 교회 사역에 대한 설명을 들으신 후 교회 계단에서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2006년부터 2013년 초까지만 해도, 저는 교회 안의 작은 사역에만 기쁜 마음으로 집중할 뿐 노회와는 어떠한 관계도 형성하지 않은 채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고 있었습니다. 2012년부터는 정기 노회에 오전이라도 참석하는 정도의 걸음을 시작했지만, 여전히 노회 안에서는 멀리서 바라보기만 하는 후배 목사였습니다.

    그러던 2013년 중순, 노회 선배 목사님이신 현상민 목사님(성산교회 원로목사, 성남노회 증경노회장 / 은퇴)께서 다가와 조심스레 물으셨습니다. 「장대은 목사, 한양교회(당시 교회명) 성도가 소수임을 노회도 잘 아는데, 어떻게 그렇게 많은 분들이 주중에 교회를 찾아 참여하는 것입니까? 노회 선배들에게 교회 사역을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하려 하는데, 괜찮겠습니까?」 개인적인 교제는 없던 분이셨지만, 당시 SNS(카카오스토리)에 올려 오던 사역 기록을 통해 후배 목사의 사역을 눈여겨보시고, 먼저 손을 내밀어 기회를 열어 주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렇게 날을 정하고, 6분의 증경노회장 부부를 포함한 9가정의 노회 선배 목사님 부부께서 도서관교회를 찾아주셨습니다. 교회에서 준비한 식사를 전후로 약 4시간 동안 도서관교회의 사역과 장대은 목사의 개인적인 목회 비전에 대해 자세히 나눌 수 있는 귀한 자리가 되었습니다.

    장대은 목사처럼 파라처치 성격을 띠는 사역을 하는 목회자에게는, 노회와 같은 연합체나 지역 목회 중심의 목회자 그룹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일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만남을 통해, 표면적으로만 알려져 있던 도서관교회와 장대은이라는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받아 주시는 통로가 열렸습니다. 이후로 도서관교회와 장대은 목사는 일반 교회와 조금 다른 길을 가는 교회와 목회자이지만, 같은 신앙을 고백하는 성남노회의 한 지체로서 따뜻하게 품어 주시는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습니다.

    훗날 노회장이라는 자리를 맡게 된 것 역시, 그날의 소통을 통해 도서관교회와 장대은 목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해 주신 선배 목사님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저 자신은 노회 임원과 같은 자리는 감당할 자격도 되지 않고, 그러한 자리는 일반 목회에 집중하시는 분들이 맡으셔야 한다 생각하여 수차례, 강하게 고사했지만, 여러 증경노회장 목사님들께서 개인적으로 불러 「장대은 목사처럼 사역하는 사람도 노회장이 되어야 노회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노회의 교회들도 그 준비된 사역으로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도리어 설득해 주시고 격려해 주신 끝에, 서기와 노회장 등의 임원 직임까지 감당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자격 없는 사람이었지만, 성남노회의 선배 목사님들께서는 「다른 사람」이라 소외시키지 않으시고 끌어안아 주셨고, 존중해 주셨고, 아주 작은 은사로 맺은 아주 작은 교회의 열매들을 도리어 칭찬해 주시며 격려해 주셨습니다. 그러니 어떻게 성남노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있고, 선배 목사님들을 존경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이 글 또한, 그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바탕에 두고 드리는 고백임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24–2025년 성남노회 노회장 사역 — 노회 활동, 총신발전기금 전달, 정기노회, 목사부부합창단, 도서관교회 방문 모습
    2024년 4월 — 2025년 4월 · 성남노회 제20주년 노회장으로 섬기는 축복을 누렸다

    아무 자격 없는 부족한 목회자이지만, 성남노회 20주년을 맞이하는 2024년 4월부터 2025년 4월까지 노회장으로 섬기게 하셨고, 그 기간을 통하여 이전에는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던 교회와 교회 연합에 대한 조금 더 확실한 비전을 세워 갈 수 있었습니다. 교회 연합을 위한 노력 가운데서도 가장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는 지역 교회들 간의 연합, 그러나 성남노회 안에서 만나며 소통할 수 있던 훌륭한 노회 선배·동료·후배 목사님들과 장로님들과의 아름다운 연합은, 그 가능성을 더욱 깊이 확인할 수 있었던 귀한 시간들이었습니다.

    03
    CHAPTER THREE · 응답

    5개월의 안식년,
    이어받은 기도에 두 가지 방향을 세우다.

    선대 목사님의 평생의 기도 · 2016년, 사역 10년을 돌아보며 정리한 비전

    장대은 목사는 처음부터 지역교회 담임목회를 계획하고 준비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도서관교회에 왔습니다. 사역을 이어가는 동안 선대 목사이신 아버지 장웅일 목사님의 기도 제목을 함께 품었습니다.교회 자산은 하나님의 것이며, 한국교회를 통해 복음을 전하는 일에 쓰여야 한다는 뜻이었습니다.

    2016년, 2대 담임목사로 10년의 사역을 마친 뒤 5개월의 안식년을 가졌습니다. 그 시간은 갑자기 새로운 비전을 얻은 순간이라기보다, 오래 이어받아 온 기도와 자신의 사역을 돌아보며 뜻을 분명히 정한 시간이었습니다. 저술 사역을 이어가는 길과 교회 자산을 공공의 선교 터전으로 드리는 길, 두 방향이 구체적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2025년까지의 사역을 한 구간으로 정하고, 그 이후에는 교회 자산이 한국교회의 연합과 복음 전도를 위해 쓰이도록 하겠다는 뜻을 선포해 왔습니다. 한 사람이 좋은 생각을 새로 품은 이야기가 아니라, 선대 목사님의 평생의 기도가 다음 사역으로 이어지는 과정이었습니다.

    01

    나의 지난 사역을 「책」으로 정리한다

    장대은 목사는 1992년도 교육전도사 사역 이후, 1998년도 부터 2016년까지 진행된 교육 사역의 경험과 결과물을 기독교서적과 일반서적 등 다양한 책으로 나누기로 했습니다. 읽기와 쓰기, 질문과 생각을 돕는 교육 사역은 자신이 오랫동안 준비해 온 영역이었습니다. 그 경험을 책과 콘텐츠로 옮겨, 자신의 자리에서 한국교회를 섬기고자 했습니다.

    02

    도서관교회 자산은 「공공의 선교 자산」이다

    선대 목사님은 이 자산이 한 개인이나 가족의 소유를 넘어,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쓰이기를 기도하셨습니다. 그 뜻을 이어받아, 2025년 이후에는 교회 자산을 공공의 선교재단에 출연하는 방향을 나누었습니다. 성남노회와 여러 교회가 연합하여 교육과 문화, 복지와 선교를 함께 감당하는 터전이 되기를 바랐습니다.

    안식년 동안 정리한 두 방향은 생각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2018년 이후 8년 동안 21권의 책을 집필했습니다. 하루 10시간 이상 학습과 연구, 집필에 집중한 결과라 할 수 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자신이 잠자고 있을 때도 자신의 책은 자신을 대신해 일하고 있기에 저술 사역에 대한 가치와 의미를 강조하며, 집필 사역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곤 했습니다.

    2017 — 2025 · 저술 사역

    작은 교회의 한 지체로서, 책으로 한국 교회를 섬기는 길

    2025년 8월 현재 장대은 목사 집필도서 23권

    저술의 비전 ─ 도서관교회 사역의 결과를 책으로 옮겨 한국 교회와 나누는 일

    장대은 목사는 2017년부터 2025년까지 크리스천과 넌크리스천을 위한 책 17권을 출간하겠다는 계획을 세웠습니다. 감사하게도 2017년 이전에 출간된 2권에 더해, 2018년 이후 기획·출간된 21권을 포함하여 총 23권의 책을 집필하며, 한국 교회의 한 지체로서 감당해야 할 사역의 일부를 힘써 감당해 왔습니다.

    저술의 줄기는 분명합니다. 트리비움 이론(8권), 트리비움 훈련 & 워크샵(7권), 동기부여(1권), 교회(1권), 성경(2권), 신앙(1권), 일반 에세이(1권) ─ 도서관교회 주중 사역에서 검증된 콘텐츠를 책으로 옮겨, 한국 교회 목회자와 성도, 기독교 가정의 부모와 자녀들이 「자신의 자리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돕는 일에 집중해 왔습니다. 안식년 이후의 사역도 같은 방향입니다. 도서관교회 20년의 사역 노하우를 책과 콘텐츠로 정리해 한국 교회의 주일학교·주중 교회학교·기독교 가정 신앙교육의 자료로 자리잡게 하는 것 ─ 그것이 지금까지의 저술 사역이고, 앞으로의 저술 사역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도서관교회 부동산 자산을 공공의 자산으로 출연하기 위한 비전을 선포하고 기도하는 데 힘썼습니다.

    이 뜻은 선대 목사님께 이어받은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2016년 안식년 이후에는 가족과 교회에 더 분명히 나누었습니다. 이후 성남노회와 소통했고, 2018년부터는 증경노회장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나누었습니다. 2020년 이전부터 이어 온 준비였습니다. 원로목사님의 소천이나 상속 문제 때문에 뒤늦게 만든 계획이 아니라, 선대 목사님과 뜻을 함께하며 오랫동안 선포해 온 비전입니다.

    사역의 은사는 이어가고, 자산은 교회 연합을 위해.

    장대은 목사가 준비해 온 교육과 저술의 사역은 분당 야탑동 517번지의 부지와 건물이 없어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어느 곳으로 옮겨 가더라도 자신의 은사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반면 이 자산은 더 넓은 교회 연합을 위한 터전으로 쓰일 수 있었습니다.

    장대은 목사가 바란 것은 사람의 기준으로 규모나 효율을 높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교회가 하나 되어 복음을 전하고, 함께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사역과 이 자산의 역할을 구분할 때, 선대 목사님이 기도하신 뜻도 더 분명하게 이어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결정은 한 목회자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선대 목사님의 뜻을 가까이에서 알고 있던 장로님과 당회, 성도들이 함께 동의했습니다. 성도의 수는 많지 않았지만, 그 뜻을 함께 받들었기에 당회와 공동의회의 결의로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 도서관교회 자산을 마중물로, 교회들이 연합하는 계기를 허락해주시고, 쉽지 않은 연합 사역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세워져 가는 아름다운 선교의 길을 열어주세요.— 장대은 목사의 기도

    선대 목사님의 기도를 이어받고, 교회 공동체와 뜻을 함께하며 이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여러 교회가 함께 세워지는 꿈을 이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그 길에 함께해 준 장로님과 당회, 성도들, 성남노회의 수고를 기억하며 감사드립니다.

    도서관교회 —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나누는 믿음의 공동체 · 도서관교회
    04
    CHAPTER FOUR · 비전

    2016년부터 이어 온 공공의 선교 자산의 꿈,
    가족의 우려와 함께 마주하다.

    선대 목사님의 기도에서 노회와의 소통까지, 서로 다른 운영의 구상

    2018년, 선대 목사님의 뜻을 이어받아 안식년 동안 정리한 비전을 실행하기 위해 장대은 목사는 성남노회 증경 노회장들 중 총회와 노회 상황에 밝은 분들,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목사님들과의 더 구체적인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도서관교회에 부임한 지 20년차 되는 2025년에 도서관교회 자산(부지와 건물)을 공공의 선교 재단으로 출연하려고 합니다. 선배 목사님들의 지도를 따라 노회 중심의 선교재단이 되는 길을 선택하고 싶습니다.」

    2016
    선대 목사님의 기도를 이어받아 비전을 구체화하다
    교회 자산을 하나님의 것으로 돌리고, 한국교회의 복음 전도에 사용하기를 바란 선대 목사님의 기도를 이어받았습니다. 안식년 동안 그 뜻을 정리하고, 2025년까지의 사역과 그 이후의 공공 출연이라는 방향을 가족과 교회에 나누었습니다. 성남노회와도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2018 ~ 2019
    노회 증경노회장 일부 목사님들과 비전을 나누기 시작
    선대 목사님과 함께 나누어 온 뜻을 실행하기 위해 증경노회장들과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했습니다. 장웅일 원로목사님도 총회나 노회 등 가장 좋은 길을 선택하자는 방향에 적극 동의하셨습니다.
    2019 ~ 2024
    가족 모임에서의 비전 공유와 지속된 우려
    설과 추석 등 가족 모임에서도 비전을 나누었습니다. 형제들은 부모님의 선교 뜻을 가장 가까이에서 알고 지킬 사람은 자녀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노회 중심의 운영이 목회자들의 조직적 이해나 정치적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그 우려를 들으며, 교회 연합의 책임 있는 운영을 통해 공공성을 지키려는 뜻을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 차이는 계속되었습니다.
    2024 ~ 2025
    성남노회 노회장 봉직
    장대은 목사가 성남노회 노회장으로 2024-2025회기 노회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노회 안에서 교회들을 돌아보는 가운데, 부동산 출연을 통한 공공의 선교 자산으로의 환원에 대한 비전이 더욱 강화되었습니다.
    2025.06.20
    故 장웅일 원로 목사 별세
    행정상 등기가 개인 명의로 남아 있던 자산이, 갑작스럽게 「상속」 절차에 들어갔습니다. 5명(모친·장남·차남·장대은·여동생)이 자동 공동상속인이 되었습니다.

    2025년 가족에게 설명했던 초기 구상 · 현재는 교회와 사택 모두 이전하는 방향으로 변경했습니다.

    도서관교회의 자산은 한국교회의 공공자산으로 환원한다. 도서관교회의 특수 사역은 이 공간이 없어도 가능한 사역이다. 이 공간이 도서관교회 너머 공공법인을 통해 한국교회의 자산이 된다면, 도서관교회가 소유했을 때보다 수십 배 더 의미 있는 사역의 장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도서관교회와 장대은 목사는 법인화 이후 의결권은 노회나 그에 준하는 공동체에 이양하고, 법인화 준비과정과 몇 년간 정착해 가는 과정에만 협조하며, 주일 예배 공간을 무상 공유받는 형태의 배려만 받고, 주중 사역은 이곳을 떠나, 지금까지 진행해 온 기독교교육을 위한 본래의 교육 사역을 새로운 차원으로 진행해 가려 한다.— 장대은 목사, 가족 모임에서 (2025)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마을목회와 교회 건물의 공공성 — 표지
    『교회 건물의 공공성』 · 총회한국교회연구원 · 쿰란출판사
    저자 소개 — 장대은 목사 포함 공동 집필진
    저자 소개 — 공동 집필진 명단

    2021년 중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측 총회 산하의 총회한국교회연구원에서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의 마을목회와 교회 건물의 공공성』 출간을 준비하며, 「교회 도서관」이라는 주제로 교회 건물의 공공성에 관한 원고를 집필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합동측 목회자에게 통합측 총회 산하기관의 청탁이 들어온 것은 그 자체로 의외의 상황이었지만, 마침 도서관교회 자산의 공공성을 위한 기도와 소통을 이어가던 시기였습니다.

    함께 글을 쓰는 분들 — 이미 교회 자산의 공공성을 삶으로 실천해 오신 목회자와 학자들의 이야기는 장대은 목사에게 큰 위로이자 자극이 되었습니다. 같은 길을 앞서 걷고 있는 분들이 분명히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교단의 경계를 넘어 한국 교회 전체가 「건물의 공공성」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그 순간을 두고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같은 방향으로 마음을 모아 주시던 인도하심의 한 장면이었다」고 고백합니다.

    05
    시련 · 소천 이후의 조율

    같은 아버지를 기억하며,
    서로 다른 길 앞에 섰습니다.

    가족의 선교 의지를 존중하며, 자산의 성격과 운영의 책임을 함께 묻는 시간

    2025년 6월 20일, 도서관교회 설립자이자 1대 담임목사인 장웅일 원로목사님이 소천하셨습니다. 이후 교회 자산의 처리와 재단 운영 방식에 대한 의견이 나뉘었습니다. 원로 사모님인 어머니, 형제들, 삼남이자 2대 담임목사인 장대은 목사가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채 조율의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부동산 등기가 원로목사님의 개인 명의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 때문에 배우자와 네 자녀가 관련된 상속 절차가 시작되었습니다. 교회는 오랜 기간 교회가 마련하고 사용해 온 자산이라는 입장에서 공공 출연을 추진했습니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헌신과 부모님의 뜻을 자녀들이 직접 이어가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소천 직후 이러한 상황을 성남노회에 알렸습니다. 도서관교회 당회와 성남노회는 어머니와 형제들을 여러 차례 만나 조율했습니다. 공식 위원회가 구성되기 전부터 이어진 만남이었습니다. 서로의 뜻을 듣고, 법정으로 가기 전에 해결할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교회 자산을 선교에 사용하자는 큰 뜻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누가 법인을 설립하고, 누가 이사장과 이사를 맡으며, 어떤 구조로 운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견 차이가 이어졌습니다.

    교회와 담임목사의 설명

    교회 연합으로 이어가는 공공의 선교

    도서관교회는 당회와 공동의회의 결의를 따라 자산을 공공의 선교재단에 출연하고자 합니다. 성남노회의 추천을 받아 독립된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향입니다. 장대은 목사와 당회는 법인의 임원 직무를 맡지 않고, 설립 이후 운영에도 개입하지 않겠다는 원칙을 밝혔습니다.

    교회 측이 전하는 가족의 입장

    자녀들이 직접 이어가는 부모님의 뜻

    형제들은 아버지의 수고로 세워진 터전에서 자녀들이 부모님의 선교 뜻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북한 선교의 뜻을 소중히 여겼습니다. 차남이 이사장을 맡고, 차남의 지인들을 중심으로 이사회를 준비하는 방향을 제시했습니다.

    차남은 연세중앙교회 집사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며, 이사회 준비에는 같은 교회 성도인 지인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장대은 목사는 설명합니다. 이 사실은 운영 구상을 이해하기 위한 배경이며, 해당 교회 전체의 입장이나 관여를 뜻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마음까지 한쪽으로 단정하지 않겠습니다.

    형제들의 우려에는 목회자 중심의 노회 운영이 선교보다 조직의 이해나 정치적 관계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도 있었습니다. 교회 연합의 가치를 바라보는 장대은 목사와는 다른 경험과 인식이었습니다. 형제들은 부모님의 뜻을 가장 가까이에서 알고, 끝까지 지킬 사람은 자녀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이익을 위한 욕심으로만 설명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고자 하는 순수한 선교 의지가 있다는 점을 존중합니다. 다만 그 뜻을 자녀 중심의 운영으로 이어갈지, 교회 연합의 독립된 운영으로 이어갈지에 대한 차이가 깊었습니다. 2016년 안식년 이후 공공 자산의 비전을 나누는 과정에서도 이 우려와 반대는 거듭 제기되어 왔습니다.

    예배당과 사택을 둘러싼 우려

    초기 계획에는 법인 설립 후 도서관교회가 2층 예배당을 무상으로 사용하여 주일 예배를 이어가는 방안이 있었습니다. 교회가 외부 사택을 마련해 줄 여력이 없었기에, 장대은 목사 가족이 2~3년 안에 별도의 거처를 준비할 때까지 2층 일부를 사택으로 사용하는 방안도 성남노회와 논의했습니다.

    형제들은 이런 공간 사용이 계속되면 교회와 담임목사, 노회가 실질적인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다고 우려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그것이 자산을 독점하려는 뜻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설명만으로는 걱정이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 문제는 결국 예배와 주거의 공간을 모두 떠나기로 하는 결단으로 이어졌습니다.

    2026년 4월 13일 · 더사랑의교회 본당

    제53회 성남노회 정기회에서
    3인 위원회가 발족했습니다.

    수차례 조율에도 갈등이 좁혀지지 않자, 정기회는 도서관교회 선교재단법인 설립의 행정 과정과 그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 해결을 돕기 위한 3인 위원회를 구성했습니다.

    위원장
    김영삼 목사
    금광교회 · 증경노회장
    위원
    김승언 목사
    열방교회 · 증경노회장
    위원
    임흥식 장로
    금광교회 · 노회 임원

    성남노회는 이 문제가 법정으로 가는 것을 최대한 막고자 했습니다. 위원회는 교회와 당회, 가족 양측과 소통하며 여러 차례 중재안을 제시했습니다. 2026년 4월 18일에는 위원회가 함께한 자리에서 교회 측과 형제 측이 만났습니다. 형제 측은 법률 대리인과 함께 참석했습니다.

    교회와 장대은 목사도 여러 조건에서 한발씩 물러서며 타협의 길을 찾았습니다. 이후 공간을 모두 비우는 결정과 가족의 선교 활동을 위한 장기 사용 제안까지 이어졌습니다. 다만 이 페이지에 정리한 마지막 제안은 장대은 목사가 가족에게 전달한 내용입니다. 이를 노회가 확정한 중재안이나 가족 모두의 합의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당시의 세무·행정 과정에 관한 기록

    기존 페이지는 2025년 12월 30일, 형제들이 준비한 재단법인 출연 계획서가 세무서에 제출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이후 이사회 구성을 조율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 가족의 세금 부담을 우려하며 서류 제출에 동의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당시 기록에는 자산평가액 약 90억 원을 기준으로 약 30억 원의 상속세 부담을 우려한 내용이 있습니다. 공익 목적의 법인 출연을 전제로 한 과세가액 불산입과, 2026년 4월 30일부터 7월 8일까지 예정되었던 세무조사 일정도 담겨 있습니다.

    이는 당시 교회 측이 설명한 경과입니다. 2026년 10월 현재의 최종 세액이나 세무조사 결과는 제공된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이 기록을 현재의 과세 확정이나 법인 설립 완료로 읽지 않도록 구분해 둡니다.

    가족의 마음을 존중하는 일과,
    교회의 공공성을 지키는 일이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이 과정을 나누며 드리는 기도
    06
    감사 · 성남노회와 걸어온 길

    한 교회의 어려움을,
    성남노회가 함께 감당해 주셨습니다.

    2006년 성남노회와 함께한 이후, 저는 교회 연합이 가진 가능성을 배웠습니다. 노회에 대한 막연한 걱정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함께 걸으며, 작은 교회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을 서로 나눌 수 있다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선대 목사님께 이어받은 기도 제목을 2016년 안식년 동안 더 분명한 비전으로 정리했습니다. 교회 자산을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드리는 뜻을 성남노회와 나누었고, 2018년부터는 증경노회장들과 더 구체적인 소통을 이어갔습니다. 2020년 이전부터 나누어 온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소천 이후 갑자기 생긴 계획이 아니었습니다.

    원로목사님의 소천 이후에는 자산 처리와 가족 간 의견 차이를 노회에 알렸습니다. 노회는 이를 한 가족에게만 맡겨 둔 문제가 아니라, 함께 돌봐야 할 교회의 어려움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공식 위원회가 세워지기 전의 만남부터 지금의 중재까지,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시간과 마음을 내어 주셨습니다.

    서로의 의견이 쉽게 좁혀지지 않는 상황에서도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법정에서 만나기 전에 해결할 길을 찾고자 했습니다. 교회의 원칙을 들으면서도 가족들의 우려를 함께 듣고, 여러 중재의 길을 제안해 주셨습니다. 그 수고를 깊이 기억합니다.

    추천을 받되, 법인은 독립적으로 운영되도록.

    도서관교회는 성남노회의 추천을 받아 선교재단의 이사장과 이사를 세우는 방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교회 연합의 신뢰를 바탕으로 사람을 세우되, 운영은 법인의 독립된 이사회가 맡는 구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장대은 목사와 당회는 이사장과 이사를 맡지 않겠습니다. 법인 설립에 필요한 행정 협력 이후에는 인사와 재정, 운영에 개입하지 않겠습니다. 이 원칙이 개인의 말에 머물지 않도록 정관에 담는 것이 저희가 추진하는 방향입니다.

    도서관교회의 자산이
    여러 교회를 세우는 선교의 터전이 되도록.
    저는 그 자리를 맡기보다,
    그 길이 열리도록 돕겠습니다.— 장대은 목사가 밝히는 현재의 원칙
    07
    결단 · 분당에서 원주로

    뜻을 설명하는 데서,
    삶의 자리를 옮기는 데까지.

    교회와 도서관, 사택의 이전 · 남은 공간의 관리와 자산 출연의 책임

    2026년 7월, 저는 가족과 성남노회에 상의한 뒤 한 가지 결정을 밝혔습니다. 도서관교회와 도서관, 저희 가정까지 분당구 야탑동 517번지의 공간에서 모두 떠나겠습니다. 교회의 자산을 공공의 선교 터전으로 드리려는 뜻이 그 건물에 머무는 데 있지 않음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형제들이 걱정한 것은 공간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형제들은 아버지의 선교 뜻이 잘못된 방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걱정했습니다. 삼남이자 2대 목사인 제가 잘못 판단하여, 정치적 이해가 작용하는 목회자 조직이라고 여긴 노회와 뜻을 모으는 것은 아닌지 우려했습니다. 진정한 복음 전도의 터전이 조직의 이해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걱정이었습니다. 이는 형제들이 바라본 우려를 전하는 것이며, 노회의 실제 성격을 그렇게 단정하는 뜻은 아닙니다.

    당초에는 법인 설립 이후에도 성남노회 소속 도서관교회로서 주일 예배를 이어갈 생각이었습니다. 자산은 재단에 출연하되, 기존 2층 예배당을 주일 예배에 한해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배려받는 방안을 노회와 논의했습니다. 별도의 사택을 마련할 재정이 없었기에, 2~3년 안에 외부 거처를 준비할 때까지 2층 일부를 사택으로 유지하는 방안도 함께 이야기했습니다.

    형제들은 이 계획을 다르게 보았습니다. 법인이 설립된 뒤에도 제가 그곳에 남아 사역하고 생활한다면, 결국 법인에 관여하고 의결권을 가지며 자산을 계속 소유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우려했습니다. 저는 공간의 제한된 사용과 법인의 운영권은 별개의 일이며, 법인 운영에 참여할 뜻이 없다고 여러 차례 설명했습니다.

    아버지의 소천 이후 1년이 넘도록 만남과 대화가 이어졌지만, 그 설명이 신뢰로 이어지지는 못했습니다. 그래서 2026년 7월, 예배 공간과 사택의 사용 계획까지 내려놓고 먼저 떠나기로 했습니다. 말로만 뜻을 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저희의 생활 자체를 옮기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저의 뜻이 이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님을,
    그곳을 떠나는 삶으로 전하고자 했습니다.— 장대은 목사가 밝히는 이주의 뜻

    새로운 교회와 사택을 마련할 예산은 없었습니다.

    떠나겠다는 뜻은 분명했지만, 갈 곳이 준비되어 있지는 않았습니다. 성남의 수정구와 중원구, 분당구와 판교를 알아보았습니다. 주변 용인과 경기도 광주도 살폈습니다. 그러나 교회와 도서관, 저희 가정이 함께 옮길 공간을 마련할 재정이 없었습니다.

    교회는 새 교회 공간과 사택을 위해 100만 원조차 지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성남노회 소속 교회라는 사실만으로 이전 예산이 생기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가진 재정 안에서 감당할 수 있는 길을 다시 찾아야 했습니다.

    그때 아내의 고향인 원주를 생각했습니다. 분당에서 차로 약 1시간에서 1시간 20분 거리였습니다. 장모님이 2014년에, 장인어른이 2015년에 소천하신 뒤 가족이 살지 않던 처가의 집이 있었습니다. 약 70년 된 작고 낡은 집이지만, 그곳을 사택으로 사용하면 주거 비용을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교회와 도서관은 별도의 상가 공간을 월세로 마련하는 방향을 정했습니다.

    처가의 집도 바로 사택으로 사용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집의 방 하나에는 장인어른 생전에 월 25만 원으로 세를 준 거주자가 있었습니다. 지역 주민센터 등 관계 행정기관과 소통하며, 거주자가 나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원주로 이주하기로 결정할 때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관계 행정기관과 여러 차례 소통했지만, 거주자의 뜻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계약 기간은 끝났으나, 강제 퇴거를 추진하는 과정은 저희에게 무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를 강압적으로 밀어붙이는 것도 저희가 바라는 선택은 아니었습니다. 결국 처음의 계획을 바꾸어, 교회와 도서관 인근에 별도의 월세 사택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주거 공간을 새로 얻을 재정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 보증금은 지인에게 빌렸습니다. 그 과정도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사택에 들어가기로 한 바로 그날에야 마지막 보증금을 마련할 수 있었습니다. 교회 공간과 사택을 함께 준비하며 원주로 옮기는 과정은 녹록하지 않았습니다.

    상속세와 취득세 문제 등이 얽혀 은행권에서 새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번 이주에 사용된 비용은 100% 지인들의 도움을 통한 개인 차용으로 마련했습니다. 무상으로 받은 후원금이 아니라, 앞으로 갚아야 할 돈을 빌려 준비한 것입니다.

    책과 교회의 물품을 두 달에 걸쳐 옮겼습니다.

    원주에 새로 얻은 상가 공간은 직접 준비했습니다. 공사를 맡길 여력이 없어 일주일에 하루나 이틀씩 오가며 페인트를 칠하고 바닥을 손보았습니다. 두 달에 걸쳐 1만 4천 권 이상의 호도애 도서관 책과 교회의 모든 기구, 사택의 짐을 여러 차례 나누어 옮겼습니다.

    2026년 10월 4일, 첫째 주일에 야탑동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렸습니다. 10월 둘째 주일인 10월 11일부터는 원주에 새로 임대한 상가 공간에서 예배를 시작합니다. 도서관교회의 이름과 사명은 원주에서도 이어집니다.

    2026년 10월 첫째 주 · 교회·도서관·사택약 95%이전 완료

    사역과 생활의 자리는 원주로 옮겼습니다.
    남은 약 5%의 물품과 기존 공간의 관리 책임은
    법인 설립이 마무리될 때까지 유지합니다.

    2026년 7월
    교회와 가정이 기존 공간을 모두 떠나기로 결정하다
    1년 넘게 설명과 조율이 이어졌지만 공간 사용에 대한 우려는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가족과 노회에 상의한 뒤, 저의 뜻이 이 건물에 머무는 데 있지 않음을 삶으로 보여드리기로 했습니다.
    이후 약 두 달
    원주의 교회와 도서관 공간을 준비하다
    원주에 상가 공간을 월세로 계약했습니다. 직접 페인트를 칠하고 바닥을 준비했습니다. 1만 4천 권 이상의 책과 교회·도서관 물품을 여러 차례 나누어 옮겼습니다.
    2026년 10월 첫째 주
    사택 입주와 약 95%의 이전을 마치다
    처가의 집을 바로 사용할 수 없어, 지인에게 보증금을 빌려 별도의 월세 사택을 마련했습니다. 교회와 호도애 도서관, 가정의 짐 약 95%를 원주로 옮겼습니다.
    2026년 10월 4일
    야탑동에서 마지막 주일 예배를 드리다
    10월 첫째 주일, 분당 야탑동의 기존 공간에서 마지막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동안의 사역을 감사하며 원주에서 이어갈 새로운 출발을 준비했습니다.
    2026년 10월 11일 · 예정
    원주에서 첫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10월 둘째 주일부터 새로 임대한 상가 공간에서 예배를 시작합니다. 법인 설립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존 공간에 남긴 물품과 행정적 책임은 유지하며, 이후 성남노회와 정리 과정을 협의합니다.

    떠난 뒤에도, 기존 공간에 대한 책임은 이어갑니다.

    약 95%의 이전은 생활과 사역의 자리를 옮겼다는 뜻입니다. 법인 설립을 위한 문제 해결과 행정 절차까지 끝났다는 뜻은 아닙니다. 교회는 법인 설립이 마무리될 때까지 기존 공간을 도서관교회 이름으로 관리하며, 담임목사도 필요한 행정적 책임을 이어갑니다.

    남은 약 5%의 짐도 그때까지 두고 관리합니다. 공간을 비웠다는 이유로 형제들이 별도의 협의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넘긴 것은 아닙니다. 기존 공간의 사용과 관리는 교회의 협의와 이후 법인 설립 절차에 따라 정리하려 합니다.

    많은 짐을 옮긴 뒤여서 기존 공간의 정리는 아직 마무리되지 않았습니다. 옥상과 창고 등 두세 곳은 누수와 오래 쌓인 물품 때문에 정비가 필요합니다. 10여 년 동안 제대로 정비하지 못한 공간에는 사용하기 어려워 폐기해야 할 물품도 많이 남아 있습니다.

    가족과의 조율, 교회 자산의 처리와 법인 설립 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들이 정리되고 법인 설립이 완료되면, 도서관교회는 성남노회와 협의하여 남은 물품을 옮기고 공간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정리할 계획입니다. 정리한 공간에서 법인이 활동할 수 있도록, 필요한 준비에 최대한 협력하겠습니다.

    성남노회의 추천으로 세워지는 독립된 선교재단이 그곳에서 사역을 시작할 수 있도록, 인계에 필요한 준비까지 책임 있게 협력하겠습니다. 그 과정을 교회 안에서도 함께 나누며 원주로의 이전을 진행했습니다.

    도서관교회의 기존 채무와 원주 이주로 발생한 채무를,
    법인에 출연할 자산의 부담으로 남기지 않겠습니다.

    현재 도서관교회의 토지와 건물을 담보로 받은 은행권 대출은 없습니다. 기존 사역에서 감당해 온 은행권 채무와 이번 이주에 사용된 비용은, 원주에서 사역을 이어가는 도서관교회가 안고 갈 부담입니다. 재단에 출연할 자산과 함께 넘기는 채무로 삼지 않겠습니다.

    기존 사역의 은행권 채무4,800여만 원

    야탑동에서 이어온 사역의 부담

    원주 이주에 사용된 비용약 4,500만 원

    교회·도서관·사택 이전을 위한 차용

    원주 사역이 함께 감당할 부담약 9천만 원대

    두 금액을 합하면 약 9,300만 원

    이 약 9천만 원대의 부담을 재단법인이 책임지도록 넘기지 않겠습니다. 교회마다 형편이 다르기에, 어떤 교회에는 아주 큰 금액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원주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도서관교회에는 작은 부담이 아닙니다. 도서관교회는 이 부담을 안고 원주에서 사역을 이어갑니다. 분당구 야탑로 124에 있는 도서관교회의 부지와 건물이 원주 사역의 채무로 인한 제약 없이, 온전한 선교재단법인의 자산으로 세워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출연할 자산과 관련하여 별도로 정리해야 할 부분은 원로 사모님께 드려야 하는 채무의 정산입니다. 이 부분은 가족에게 전달한 마지막 제안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자산을 재단에 출연한 뒤, 향후 재개발에 따른 금전적 보상 등이 발생하면 법인이 원로 사모님 관련 채무를 정산하도록 합의 내용과 지급 책임을 문서로 남기는 방향을 추진하고자 합니다.

    이 부지가 속한 단지에는 2026년 봄 재개발 위원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향후 10~15년 안에 재개발이 이루어진다면 그때의 보상과 채무 정산을 연결하는 구상입니다. 다만 재개발 시점은 확정된 일정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정산 금액과 지급 조건은 가족과의 합의와 필요한 절차를 통해 정리할 사항입니다.

    대여금의 상환과 부동산의 지분은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 정산에 관한 도서관교회의 기준은 분명합니다. 1993년 분당으로의 이전을 준비할 당시, 원로 목사님과 사모님이 교회에 헌금하신 금액과 별도로 빌려주신 돈은 교회 설립에 필요한 자금의 대여였습니다. 교회 입장에서의 차용금이며, 교회 부지와 건물에 대한 지분을 취득하기 위한 투자가 아니었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입니다.

    장대은 목사는 교회의 2대 담임목사이기 이전에, 고 장웅일 목사님과 원로 사모님의 삼남입니다. 이 건물의 행정적 상속인이기도 합니다. 개인의 입장과 세상의 기준으로 보면 적지 않은 상속의 이해관계가 있는 당사자입니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자산의 성격과 책임을 먼저 생각하고자 합니다.

    교회에 빌려준 돈을 부동산 지분으로 환산하거나, 부모님의 피땀을 기억하는 자녀의 애틋한 마음을 근거로 교회 전체 자산을 한 가정의 자산으로 여기는 것은 신앙적으로 옳지 않다는 것이 장대은 목사의 판단입니다. 부모님의 헌신을 존중하는 마음과, 교회가 빌린 돈을 갚을 책임은 분명히 지켜져야 합니다. 그 책임이 교회 전체 자산의 소유나 운영을 가족에게 맡기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형제들은 재단법인을 세우면 개인 명의의 자산이 아니므로 공공성이 확보된다고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장대은 목사는 법인의 이름만큼이나 누가 의결권을 갖는지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설립 목회자의 자녀들이 이사장과 이사가 되어 의결권을 행사한다면, 법인의 방향과 자산의 사용이 가족 중심으로 결정될 수 있습니다. 이런 구조는 재단법인의 형식을 갖추더라도 실질적인 사유화로 이어질 우려가 있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삼남이자 2대 담임목사인 장대은 목사는 자신을 포함한 고 장웅일 원로목사님의 자녀들이 법인의 이사장이나 이사를 맡지 않아야 한다는 뜻을 밝혀 왔습니다. 도서관교회 담임목사인 자신도 이사장과 이사 직무를 맡을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설립 목회자의 가족이나 2대 담임목사가 법인의 의결권과 방향을 주도할 가능성을 처음부터 막는 것. 독립된 이사회가 공적인 책임에 따라 운영하도록 정관에 원칙을 담는 것. 이것이 도서관교회의 자산을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드리는 일의 핵심이라는 것이 장대은 목사의 뜻입니다.

    따라서 원로 사모님께 드릴 정산금은 부동산 가치에 따른 지분 보상이 아니라, 교회가 빌린 돈을 갚는 것입니다. 도서관교회는 야탑로 124의 부지와 건물이 100% 교인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진 교회 자산이며, 원로 사모님께 상환해야 할 채무가 별도로 있다는 기준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그 대여금에 대한 정산 금액은 적정한 이율을 적용하여 결정할 계획입니다. 이 기준을 바탕으로 가족과 합의하고, 필요한 절차를 거쳐 금액과 지급 조건을 문서로 정리하고자 합니다.

    원로 사모님 관련 정산 사항은 분명히 문서로 남기고, 원주 사역의 채무는 구분하여 감당하려 합니다. 토지와 건물에 사역과 이주의 은행 채무를 얹지 않고, 자산과 책임의 범위가 분명한 상태로 공공의 선교 터전에 출연하는 것이 저희가 지키려는 방향입니다.

    부부가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개척의 출발입니다.

    도서관교회의 지난 20년은 주중 사역을 중심으로 이어졌습니다. 주일에 함께 예배드린 인원은 목사 부부와 가족, 장로님 부부를 포함해 평균 10명 안팎이었습니다. 다른 교회에 다니던 분들을 새 주일 교인으로 등록받는 대신, 각자의 교회에서 더 잘 섬기도록 교육을 지원하는 원칙을 20년 동안 지켜왔습니다. 지금도 수십 가정이 도서관교회의 주중 사역과 연결되어, 서로 공동체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원주로 옮기면서 함께 예배드리던 몇몇 가정은 각자의 지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저희 두 자녀도 이번 이주와 함께 신앙의 독립을 준비했습니다. 첫째 딸은 아버지가 목회하는 교회를 떠나, 스스로 신앙 공동체를 선택하고 믿음의 삶을 이어가기로 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인 둘째 딸은 원주로 함께 이주합니다. 다만 신앙의 삶은 아버지의 교회 안에만 머물지 않기로 했습니다. 토요일마다 다른 개척교회로 가서 신앙생활을 하며, 자신의 믿음을 스스로 세워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두 자녀의 신앙 독립도 원주 이주와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따라서 원주에서의 예배는 장대은 목사 부부를 중심으로 다시 시작합니다. 가정의 사정으로 밀양에 계신 장로님 부부가 두어 달에 한 번씩 예배에 함께하는 형태입니다. 기존 공동체 전체가 그대로 옮겨온 출발이라기보다, 작은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개척의 출발입니다.

    2026년 11월 · 본격적인 지역 사역의 시작

    평안 가운데 준비하는,
    새로운 땅에서의 새로운 출발.

    장소는 바뀌어도, 사람을 세우는 사명은 이어집니다.

    원주로 옮기는 과정에는 바라지도, 예상하지도 못한 갈등과 분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는 야탑동에서 쫓겨나는 마음으로 이 길을 선택한 것은 아닙니다. 선대 목사님의 뜻을 이어받아 2016년 안식년 동안 정리했던 기도 제목을, 삶의 다음 자리에서 이어가려는 선택이었습니다.

    2006년 청빙을 받고 사역을 시작했을 때부터, 저는 이 출발이 제게 얼마나 큰 혜택이었는지 알고 있었습니다. 좋은 지역에 이미 마련된 공간에서 아버지의 목회를 이어받았습니다. 세습이라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는 자리였습니다. 동시에 제게는 많은 것이 주어진 출발이었다는 사실을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지난 20년 동안 그에 대한 마음의 부담을 내려놓은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2016년 안식년 동안, 2025년까지의 사역을 한 시기로 정리하고 이후 이 공간을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드리겠다는 뜻을 더욱 분명히 했습니다. 제게 그것은 한국교회와 동료 목회자들, 그리스도인들에게 지고 있던 마음의 빚을 갚는 길이었습니다. 감사한 것은 그 뜻이 선대 목사님의 평생의 기도이기도 했다는 사실입니다.

    제가 새롭게 품은 고귀한 뜻이라고 내세우고 싶지 않습니다. 선대 목사이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받아 실천할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뿐입니다. 다만 그 뜻을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 아픔 가운데서도 맡겨진 뜻과 감사의 마음을 지키며, 다음 사역의 자리로 나아가고자 합니다.

    그때부터 이주의 장소를 2026년의 원주로 정해 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여러 과정을 지나며,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을 다시 경험하고 있습니다. 교회 공간이 정해진 순간에도, 예정했던 사택을 사용할 수 없어 다른 사택을 마련한 순간에도, 예상하지 못한 길이 열렸습니다.

    예정했던 사택의 거주 문제(입주가 불가능한 상황)에 관한 주민센터 직원과의 통화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사택 보증금과 월세가 필요해졌습니다. 그러나 이를 준비하고 짐을 옮기는 모든 과정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였음을 다시 고백합니다.

    이처럼 사소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담는 것은, 교회 자산을 공공의 자산으로 드리는 과정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충분히 전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한국교회 앞에 나누는 갈등과 불협화음 속에서도,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이끄시는 하나님의 세밀한 인도하심에 대한 감사의 고백입니다. 큰 결정뿐 아니라 그 결정을 삶으로 옮긴 작은 과정까지 드러내어, 전반적인 상황을 이해하실 수 있도록 기록하고자 합니다.

    두 달 동안의 이주는 몸으로 감당해야 할 일이 많았습니다. 재정도, 공간도, 일정도 쉽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마음의 평안을 주셨습니다. 지금 저희 부부는 불안과 걱정에 머무르기보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새로운 땅에서의 사역을 기대하며 11월의 출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주하는 동안에도 밤 시간을 이용해 교회와 도서관의 다음 사역을 정리했습니다. 목사로서 저는 누구인지, 이 상황을 지나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다시 묻는 시간이었습니다. 사역의 자리만 바꾸는 것이 아니라, 맡겨진 정체성과 책임을 새롭게 돌아보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교회

    원주에서 함께 세우는 믿음

    10월의 첫 예배를 시작으로, 11월부터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본격적으로 이어갑니다. 작은 공동체로 다시 출발하며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갑니다.

    도서관

    사람을 세우는 지역의 배움

    호도애 도서관을 통해 원주의 이웃과 다음 세대를 만납니다. 읽기와 쓰기, 질문과 생각을 돕는 배움의 사역을 이어갑니다.

    트리비움 아카데미

    강원과 전국의 교회를 지원하는 교육

    강원 지역과 전국의 목회자, 그리스도인과 가정을 지원합니다. 지난 20년 동안 도서관교회가 감당해 온 교육 지원의 사명은 계속됩니다.

    새로운 자리에서 다시 시작합니다.
    교회와 도서관, 교육으로 이어온 사명은 계속됩니다.
    로마서 8장 28절의 말씀을 붙들며
    08
    제안 · 부모님의 뜻을 함께 잇는 길

    공공의 자산과,
    가족의 선교가 함께 서도록.

    장대은 목사가 형제들에게 전달한 마지막 제안의 취지와 조건
    가족에게 전달한 제안 · 합의 또는 계약 완료 아님

    제가 완전히 떠나기로 한 뒤에도, 형제들이 걱정한 마음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의 수고와 어머니의 헌신이 남아 있는 공간입니다. 부모님의 선교 뜻을 자녀들이 이어가고 싶다는 마음도 소중합니다. 그 마음과 자산의 공공성을 함께 지킬 길을 찾고자 마지막 제안을 전했습니다.

    핵심은 자산 전부를 공공의 재단법인으로 출연하되, 일부 공간에서는 형제들이 부모님의 뜻을 받들어 북한 선교를 이어가는 것입니다. 제가 떠난 뒤에도 가족의 선교는 그 터전에서 이어질 수 있도록 하자는 구상입니다.

    차남이 이사회에 참여하기보다 선교 공간에서 사역하는 방향을 제안했습니다. 임원에 참여하는 선택을 하려면, 아래의 장기 공간 사용 제안은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건도 밝혔습니다. 이 조건은 2026년 10월 3일 제안문에 보완된 내용입니다. 당시의 협의 조건과 별개로, 교회가 세우고자 하는 법인의 운영 원칙은 장대은 목사를 포함한 설립 목회자의 가족이 이사장이나 이사를 맡지 않는 것입니다.

    마지막 제안의 주요 내용
    항목제안 내용
    자산과 운영교회 자산 전부를 재단법인 명의로 출연하고, 성남노회의 추천을 바탕으로 독립된 이사회를 구성하는 방향입니다. 장대은 목사와 당회는 임원과 운영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가족의 선교 공간1층 일부 약 36평을 부모님의 뜻을 잇는 북한 선교의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제안했습니다. 원로 사모님의 거주와 돌봄도 함께 고려하는 구상입니다. 면적은 제안 당시의 설명이며, 최종 공간은 실측과 협의가 필요합니다.
    당시 제안의 기간과 조건장기 공간 사용은 25년을 기준으로 제안했습니다. 차남이 이사회에 참여하는 선택을 할 경우에는, 이 공간 사용 제안은 적용하지 않는다는 조건을 2026년 10월 3일에 덧붙였습니다. 이는 당시 전달한 협의 조건의 기록입니다. 교회가 정관에 담고자 하는 운영 원칙은 설립 목회자의 가족과 2대 담임목사가 법인의 임원에 참여하지 않는 것입니다.
    채무 정산 제안제안문에서 약 3억 4천만 원으로 언급한 원로 사모님 관련 채무를, 향후 자산의 현금화나 재건축 보상 시 5억 원으로 정산하는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채무의 인정 범위와 최종 금액은 별도 확인과 합의가 필요한 사항입니다.
    정산 전 공간 사용성남노회와 협의한 도서관교회 측의 제안은, 원로 사모님에 대한 채무 정산과 무상 공간 사용을 연결한 구상입니다. 최대 25년을 기준으로, 채무를 정산하기 전까지 원로 사모님과 2대 담임목사 장대은 목사의 형제들이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어 북한 선교를 위한 공간으로 사용하도록 하자는 내용입니다. 실제 기간과 종료 조건은 합의로 정해야 합니다.
    재건축이 이루어질 경우정산금을 지급받으면 공간 사용을 종료하는 방안입니다. 계속 사용하기로 합의한다면 재건축된 공간에서도 약 40평을 사용하되, 처음 제안한 25년의 전체 기간을 기준으로 삼자는 뜻입니다. 재건축 여부와 관계없이, 장대은 목사를 비롯한 형제들에게 교회 부동산의 지분에 따른 권한이나 보상을 인정하는 제안은 아닙니다. 교회가 추진하는 정산의 범위는 원로 사모님에 대한 채무 상환이며, 법적 절차와 범위 안에서 이를 정리한다는 것이 교회의 입장입니다.
    채무를 담보하는 방법정산 시점과 지급 책임을 문서로 남기고, 근저당 설정 등 담보 방안을 검토하자는 제안입니다. 그 방식이 이미 승인되었거나 설정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장대은 목사의 정산 몫제안된 정산금과 가족의 공간 사용에 대한 자신의 몫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습니다. 어머니를 모시는 책임도 형제들과 나누어 이어가기를 요청했습니다.

    선교의 뜻과 어머니를 모시는 책임도 함께.

    저희 부부는 오랜 시간 이 공간에서 생활하며 어머니를 돌보아 왔습니다. 원주로 옮긴 뒤에는 큰형과 둘째 형, 형수님들이 그 돌봄을 나누어 이어가기를 요청했습니다. 원로 사모님이 지내실 공간을 마련하고, 나머지 공간은 선교 사역에 맞게 정돈하는 구상도 함께 전했습니다.

    이는 어머니의 거주와 생활을 일방적으로 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머니의 의사와 생활을 존중하면서 가족이 함께 풀어가야 할 과제입니다. 재단의 공공 운영과 가족의 선교, 어머니에 대한 돌봄이 서로를 해치지 않는 길을 바랐습니다.

    다른 가족 재산에 대해서도 제 뜻을 밝혔습니다.

    개인 제안문에는 평택의 가족 재산과 취득세, 서산 토지 처분에 관한 의견도 담겨 있습니다. 저는 교회 자산의 공공 출연 문제와 다른 가족 재산의 정산을 구분하고 싶었습니다. 제안한 5억 원 정산금과 평택 재산에 대해서는, 제 몫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세 형제자매가 협의하도록 하겠다는 뜻을 전했습니다.

    다만 이 내용 역시 실제 권리의 포기나 재산 분배가 모두 완료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취득세 부담과 지분 처리에 대해서는 제안문에서도 조건을 함께 언급했습니다. 정확한 범위는 관련 당사자들의 확인과 문서 정리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제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의 뜻도 전했습니다.

    저는 제 상속 지분을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 유지재단에 기부하는 방안도 가족에게 밝혔습니다. 이후 필요한 절차에 협력하며, 도서관교회 담임목사로서 자산의 공공 출연을 돕겠다는 뜻입니다. 이는 향후의 선택으로 밝힌 계획이며, 기부와 관련 절차가 완료되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제안은 자리를 지키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제가 떠난 뒤에도,
    부모님의 선교 뜻과 교회의 공공성이
    함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마지막 제안의 취지를 정리한 문장
    09
    공개 · 함께 기도하며 지혜를 구합니다

    비난의 자리가 아닌,
    기도와 회복의 자리가 되기를.

    이 페이지는 제작한 뒤 약 6개월 동안 공개하지 않고 두었습니다. 가족의 갈등이 알려지면 형제들이 공적인 비난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가능한 한 성남노회 안에서 대화와 중재로 해결하고자 했습니다.

    소천 직후 상황을 알린 뒤부터 여러 차례 만남이 이어졌습니다. 정기회의 결의로 3인 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위원회는 법정으로 가는 일을 막고자 중재했습니다. 교회와 저 역시 여러 조건에서 물러섰고, 결국 예배와 생활의 공간을 모두 떠나는 결정을 했습니다.

    부모님의 뜻을 잇는 가족의 선교 공간도 마지막으로 제안했습니다. 장대은 목사의 설명에 따르면, 그 제안의 핵심 내용에 대해 약 두 달 동안 카카오톡이나 전화로 답변을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10월 3일에 보완한 일부 조건에 대한 경과와는 구분하여 말씀드립니다.

    답변이 없다는 사실만으로 형제들의 마음이나 의도를 단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만 더 이상의 조율이 어떻게 이어질지 알 수 없는 가운데, 이제 한국교회와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총회, 그리스도인들 앞에 이 과정을 기도 제목으로 나누고자 합니다.

    판단을 재촉하기보다, 지혜를 구합니다.

    이 기록은 도서관교회 담임목사인 저의 기록과 기억, 교회 측이 보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가족들의 모든 생각을 대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확인된 자료와 저의 기억, 현재의 제안과 앞으로의 계획을 구분하여 전하려고 애썼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사실을 조금의 과장도 없이 기록하려고 했습니다. 사실관계에 잘못된 내용이 있거나 다른 자료와 설명이 있다면, 형제들의 반론에도 언제든 귀 기울이겠습니다. 확인이 필요한 부분은 함께 살피고, 잘못 기록된 내용이 확인되면 바로잡겠습니다. 사실을 더 정확히 나누는 일이 서로의 이해와 회복에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교회 자산의 공공성을 지키는 일과 가족의 존엄을 지키는 일이 함께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아버지의 목회와 어머니의 헌신, 형제들의 선교 의지가 서로를 공격하는 말로 남지 않기를 바랍니다. 필요한 사실은 분명히 나누되, 서로의 마음을 함부로 재단하는 일은 멈추고 싶습니다.

    명의 문제를 더 일찍 정리하지 못한 담임목사의 책임도 피하지 않겠습니다. 오늘의 기록을 통해 한국교회가 비슷한 문제를 미리 돌아보고, 공공의 자산을 책임 있게 준비하는 계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함께 기도해 주십시오
    • 자산이 교회 연합을 위한 공공의 선교 터전으로 이어지도록.
    • 어머니와 형제들의 마음이 보호되고, 가족의 관계가 회복되도록.
    • 성남노회의 중재와 필요한 행정 절차에 지혜가 더해지도록.
    • 원주에서 시작하는 도서관교회와 호도애 도서관의 사역이 잘 세워지도록.

    이 공개가 한쪽의 승리를 위한 외침이 아니라, 막힌 대화를 다시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갈등의 마지막 장면만 남는 것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과정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도서관교회 담임
    장 대 은 목사
    2026년 10월 10일 보완
    동행 · 한국교회에 드리는 부탁

    기도와 지혜로,
    함께 걸어 주십시오.

    도서관교회의 자산이 공공의 선교 터전으로 이어지고,
    가족의 관계도 회복되는 길을 위해 기도와 동행을 부탁드립니다.

    기도로 함께해 주세요

    공공의 뜻을 지키는 일과 가족의 마음을 돌보는 일이 함께 이루어지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성남노회의 중재에 지혜가 더해지고, 원주에서 이어가는 사역도 잘 세워지기를 바랍니다.

    서로의 존엄을 지키는 말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사실에 대한 질문과 의견은 소중히 듣겠습니다. 개인을 모욕하거나 가족을 향한 비난을 부추기는 글은 게시판 운영 기준에 따라 정리할 수 있습니다.

    기도 게시판으로 가기

    전문적 지혜를 나누어 주세요

    법무와 세무, 선교재단 설립과 정관 마련, 교회 자산의 공공 운영에 경험이 있는 분들의 지혜를 구합니다.

    현재 도서관교회에는 재단법인 설립을 위해 출연하고자 하는 토지와 건물 외에, 설립 절차와 전문가 자문에 사용할 재정이 마련되어 있지 않습니다.

    조심스럽게 부탁드립니다. 변호사, 세무사, 법무사 가운데 한 작은 교회의 자산을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드리려는 뜻에 공감하시고, 성남노회와 함께 자원하여 전문적인 섬김으로 동행해 주실 분을 찾고 있습니다. 현재는 자문료나 보수를 지급할 수 없는 상황임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지난 약 15개월의 조율과 분쟁 과정에서도, 성남노회 목사님들의 도움으로 전문가들의 자문을 자원봉사의 형태로 지원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 수고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의 자산 정리와 법인 설립은 더욱 체계적이고 전문적인 절차로 이어져야 하기에, 필요한 검토와 실무에 함께해 주실 분들의 도움을 구합니다.

    • 자산 출연과 독립된 이사회 운영을 위한 절차.
    • 담임목사와 당회의 운영 불개입 원칙을 담는 정관.
    • 가족의 선교 공간과 채무 정산 제안의 적절한 검토.
    • 대화와 중재를 통해 관계를 보호하는 해결 방법.

    이 부탁을 드리는 저희의 진심이 전해지기를 바랍니다. 도서관교회와 성남노회가 함께 감당하는 이 과정이,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을 지키고 여러 교회가 함께 섬길 선교의 터전을 세우는 일로 이어지기를 소망합니다. 그 뜻에 마음을 모아 주실 분들의 자발적인 동행을 정중히 부탁드립니다.

    전해 주신 동행의 뜻은 도서관교회 당회가 성남노회 3인 위원회와 소통하며 살피겠습니다.

    전문 동역 비밀 게시판으로 가기

    연락처

    교회도서관교회 · 분당에서 원주로 사역과 생활 공간 이전 중

    담임장대은 목사

    소속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성남노회

    이메일hodoe1318@hanmail.net

    RESOURCES · 모든 자료들

    모든 자료들

    자료 1. 영상

    (도서관교회 1대 목사) 고 장웅일 목사(1933-2025) / 2024년 촬영한 영상

    자료 2. 회계장부 (일부)

    고 장웅일 목사님께서 직접 작성하신 회계장부

    회계장부 1회계장부 2회계장부 3
    한눈에 보는 회계 흐름

    분당 야탑 도서관교회(구 한양교회) 부지·건물 분양 수입·지출 정리

    반포한양교회 매도(1990)부터 야탑동 이전 감사예배(1994)까지, 교회 자산과 원로 사모님 차용금의 흐름을 시간 순으로 정리한 요약입니다.

    ※ 모든 회계장부는 선대목사님(고 장웅일 목사)께서 직접 작성한 것입니다.

    ① 반포한양교회 매도 · 임시 예배처소
    • 1990. 7. 16반포한양교회 매도 (50평 × 평당 700만원)+ 350,000,000원
    • 1991. 10. 5동일 장소 1년 전세 계약 (1년 후 비워주기로 함)− 100,000,000원
    ② 분당 유치원 건물 매입 · 교회 재산 지출
    • 1992. 12. 231차 — 분당 유치원 건물 계약− 65,000,000원
    • 1993. 6. 252차 — 1차 중도금− 70,000,000원
    • 1993. 7. 16분당구 정자동 42-1번지(지하 34평)로 교회 이사 (보증금 1,000만원 / 월세 30만원)− 10,000,000원
    • 1993. 12. 273차 — 2차 중도금− 30,000,000원
    • 1994. 7. 11유치원 건물 잔금 완불− 5,936,252원
    • 1994. 7. 21정자동 예배처소 보증금 회수+ 10,000,000원
    ③ 유치원 건물 잔금 · 원로 사모님 차용 지출
    • 1994. 6. 10차용 1차 — 잔금 1부− 17,000,000원
    • 1994. 6. 16차용 2차 — 잔금 1부− 33,339,251원
    • 1994. 7. 10차용 3차 — 잔금 1부− 24,950,000원
    • 1994. 7. 18차용 4차 — 잔금 1부− 13,700,000원
    ④ 야탑동 이전 합계
    • 교회 지불 (교회 재산)170,936,252원
    • 원로 사모님 차용88,989,251원
    • 총 합계259,925,503원

    1994. 7. 21 야탑동 517번지로 이사 · 1994. 9. 12 야탑동 517번지 한양교회 이전 감사예배

    ⑤ 이후 주요 사건
    • 2006. 4. 17장대은 목사 한양교회 위임목사 허락 (제13회 성남노회)
    • 2006. 4. 29장웅일 목사 원로목사 추대 / 장대은 목사 위임목사 취임
    • 2006. 12마지막 주 예배 후 차남 가정 교회에서 나감
    • 2007. 8 경장남 가정 교회에서 나감

    자료 3. 장남과 차남에게 보내는 문자

    문자 2

    2023년도에 아버지가 차남에게 보낸 문자. (아버지가 장대은 목사에게 보여주심)

    문자 1

    ※ 실명이 들어간 부분은 블러처리했고, 실명 대신 장남과 차남으로 문장을 대신함.

    자료 4. 첫번째 유언장 (2025.5.13. 화 / 장남 식당에서 작성한 유언장)

    첫번째 유언장

    ※ 실명이 들어간 부분은 블러처리했고, 실명 대신 장남과 차남으로 문장을 대신함.

    자료 5. 첫번째 유언장이 작성되던 날 오전, 오후, 밤의 통화 음성, 대화 녹취

    이 자료는 2025년 5월 13일의 통화와 대화를 담고 있습니다. 장대은 목사는 당시 아버지의 치료에 동행하며 분당과 평택을 오가는 생활을 도왔다고 설명합니다. 그날 작성된 유언장의 존재는 당시 알지 못했다고 설명합니다. 영상에는 교회 자산과 선교재단 운영에 관한 가족의 서로 다른 생각이 나타납니다. 녹음 당시의 맥락과 각자의 설명을 함께 살펴야 하는 자료입니다.

    자료 6. 두 번째 유언장 (2025년 6월 15일 · 평택)

    유언장 2

    2025년 6월 15일(주일) 작성. 소천하시기 5일 전.
    장남이 아버지가 계신 평택에 가서 거동이 불편하신 아버지와 집에서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유언장을 작성.

    ※ 실명이 들어간 부분은 블러처리했고, 실명 대신 장남과 차남으로 문장을 대신함.

    소천하시기 4일 전 촬영한 영상 · 공개 보류
    삼남이자 2대 담임목사로서 전하는 기억

    소천을 앞둔 아버지의 모습과,
    뒤늦게 알게 된 유언장.

    두 번째 유언장에 적힌 작성일은 2025년 6월 15일입니다. 아버지, 고 장웅일 목사님께서 소천하시기 5일 전입니다. 그다음 날인 6월 16일 월요일, 아버지는 분당으로 오셨습니다. 소천하시기 4일 전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백혈병 진단을 받으신 뒤 약 5개월 동안, 병원에 모시고 다니며 치료 과정에 동행한 사람은 삼남인 저였습니다. 6월 16일 제가 직접 뵌 아버지는 혼자 거동하기 어려우셨습니다. 음식을 씹어 삼키는 일도 힘겨워하셨습니다. 입안에 음식이 남아 있는데도 계속 더 넣어 달라고 하셨습니다. 대화는 가능했지만, 일상적인 상황을 살피고 판단하시는 모습에는 매우 연약한 부분이 보였습니다. 제가 곁에서 보고 기억하는 당시의 모습입니다.

    그날 저는 전날 유언장이 작성되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유언장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아버지가 소천하신 뒤 한 달 가까이 지난 7월이었습니다. 형제들이 자신들을 중심으로 한 재단법인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고 교회 측에 통보했을 때, 저는 그 유언장을 처음 보았습니다.

    그때 저는 담임목사이기 이전에 한 아들이자 형제로서, 마음속에 분노까지 느꼈습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모습을 곁에서 지켜본 자녀로서 느꼈던 솔직한 감정입니다.

    담임목사인 저에게도 교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습니다. 건물의 용도 변경과 명의 이전 등 정리해야 할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백혈병 투병 과정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저는, 아픈 아버지 앞에서 교회의 행정 문제를 꺼낼 수 없었습니다. 그 말씀을 드리는 일이 아버지의 죽음을 미리 떠올리며 재산을 정리해 달라는 요구처럼 느껴질까 두려웠습니다. 아들로서는 차마 할 수 없는 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야기조차 꺼내지 못했습니다.

    유언장이 작성된 6월 15일 새벽에도, 다음 날인 6월 16일 분당에 오신 뒤에도, 아버지께는 몸이 아프셔서 겪으신 사적인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 구체적인 모습까지 이 자리에 옮기지는 않겠습니다. 거동조차 어려우셨던 아버지가 얼마나 병약해져 계셨는지를, 저는 당시의 상황과 곁에서 지켜본 모습을 통해 기억하고 있습니다.

    약 5개월 동안 병원을 오가며, 2주에 한 번씩 수혈을 받으시는 과정에도 동행했습니다. 아버지의 몸이 점점 약해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런 아버지께 행정 문제를 꺼내지 못했던 것은 아들로서 마땅한 마음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담임목사로서 해야 할 일을 미뤘다는 책임도 느낍니다. 아들로서는 꺼낼 수 없었던 말이, 담임목사로서는 직무유기처럼 느껴지는 자책으로 남았습니다. 그 두 마음 사이에 제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오랫동안 이 교회의 자산이 한국교회를 위한 공공의 자산이 되어야 한다는 뜻을 말씀해 오셨습니다. 저의 목회에 대해서도 처음 10년 동안은 일반적인 지역교회 목회와 다른 방식에 걱정을 보이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책을 쓰고 강의하며 성남노회 안에서 활동하는 모습을 지켜보시면서 신뢰가 깊어졌습니다. 이후에는 삼남이 도서관교회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목회를 잘 감당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씀하시곤 했습니다. 교육을 중심으로 한 저의 사역이 가진 차이도 인정해 주셨습니다.

    그런 아버지의 평생의 뜻과 저를 향한 신뢰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도서관교회를 배제한 내용으로 이해되는 유언장을 마주했을 때 더욱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저는 그 작성 경위를, 장남이 불러주는 내용을 아버지께서 적으신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목회한 20년 동안 아버지께서 한결같이 말씀해 오신 뜻과 전혀 다른 내용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저로서는 그렇게밖에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다만 이는 유언장의 내용과 아버지의 말씀을 비교하며 제가 유추한 경위입니다. 형제들은 이러한 설명이 사실이 아니라고 이야기합니다.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삼남이자 담임목사인 저는 유언장 작성에 관한 사전 논의에서 배제되었다는 점입니다. 작성될 내용을 미리 알지 못했고, 그 뜻을 함께 논의할 기회도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에게 미리 알리고 함께 논의한 내용도 아니었습니다.

    (추정) 저는 이러한 사전 논의의 배경에 대해서도 의문을 갖고 있습니다. 저는 2018년부터, 2025년까지의 목회를 한 시기로 정리한 뒤 이 교회를 한국교회의 공공 자산으로 증여하겠다는 비전을 알려 왔습니다. 형제들이 그 방향을 막기 위해, 저에게 알리지 않은 채 별도의 논의를 진행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비밀스러운 논의였다고 제가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다만 그 목적과 동기는 제가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당시의 상황을 통해 갖게 된 추정입니다.

    5월 13일의 첫 번째 유언장에는 이사장을 지정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위의 자료 5에는 당시 아버지와의 통화 음성을 영상으로 만들어 게재해 두었습니다. 그 음성에는 교회의 선교센터 업무에 장남과 차남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씀이 담겨 있습니다. 소천하시기 약 한 달 전의 상황입니다.

    그런데 소천하시기 5일 전인 6월 15일의 두 번째 유언장에는 차남을 이사장으로 정하는 내용이 더해졌습니다. 건물의 용도 변경도 유언장 작성 이후 아내와 장남, 차남이 맡아 진행하도록 적혀 있습니다. 한 달 전 통화에 담긴 아버지의 말씀과는 정반대의 방향으로 느껴졌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심신이 매우 약해진 아버지께, 평생 나누어 오신 뜻과 다른 내용을 불러주고 작성하게 한 일이었습니다. 저에게는 그것이 아버지의 뜻을 존중하는 과정이기보다, 형제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뜻을 바꾸도록 하는 강요처럼 느껴졌습니다. (형제들은 당시 아버지의 정신이 또렷했다고 주장합니다.) 이 대목에서 저는 아버지를 돌보던 아들로서 화가 났고, 교회를 맡은 목사로서도 깊은 아픔을 느꼈습니다.

    (추정) 추가 유언장 작성의 동기에 대해 드는 의문입니다. 저는 5월 13일의 유언장에 도서관교회 자체의 지분이나 공적 운영권이 명시되어 있지 않다고 읽었습니다. 그럼에도 형제들은 자신들이 이사장과 임원이 되어, 이후 교회 자산에 관한 행정과 의결권을 행사할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꼈던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듭니다. 그래서 6월 15일, 그 권한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한 유언장을 아버지께 추가로 작성하도록 한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됩니다. 이는 형제들의 동기를 확인한 사실이 아니라, 두 유언장의 차이를 보며 제가 갖게 된 추정입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병중에 그와 같은 이유로 다른 내용의 유언장을 작성하게 한 것이라면, 저는 담임목사로서도 삼남으로서도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일입니다. 아버지가 평생 나누어 오신 뜻에 반한다고 제가 받아들이는 유언장이 이렇게 작성된 과정은, 가족으로서는 너무나 안타깝고 목사로서는 너무나 가슴 아픈 일입니다. 이 아픔을 말씀드리는 것은 아버지의 뜻과 교회의 공공성을 어떻게 지켜야 할지 함께 묻기 위해서입니다.

    6월 16일에는 아내가 아버지께 음식을 떠먹여 드리며 대화하는 모습을 영상으로 남겼습니다. 이 영상을 한때 게재했다가 내렸습니다.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기억하는 분들께서, 가능하면 그 모습으로 아버지를 기억해 주시기를 바랐기 때문입니다.

    필요하다면 당시의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이 영상을 차후 공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공개를 보류합니다. 아버지의 마지막 연약한 모습이 공개되는 상황까지 이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자료 7. 언론 보도 — 기독신문

    기독신문 보도 — 도서관교회 사진기독신문 보도 — 기사 본문

    도서관교회가 당회(2026.1.28)와 공동의회(2026.2.8)를 통해 만장 일치로 가결한
    교회 자산(건물 및 부지)의 공공 환원을 위한 선교재단법인 설립에 대한 소식이 총회 교단지 [기독신문]에 게재됨.

    출처 : 주간기독신문(https://www.kidok.com)

    자료 8. 성남노회 안건 상정, 결의하다 (2026.4.13)

    도서관교회 자산을 법인화 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내부 분쟁 해결을 위한 3인위원회 구성을 위한 청원이
    제53회 성남노회 정기회(2026.4.13. 월 / 더사랑의교회 본당)에서 정식 안건으로 상정, 가결되다.
    3인 위원으로 김영삼 목사(금광교회 담임 / 증경노회장), 김승언 목사(열방교회 담임 / 증경노회장), 임흥식 장로(금광교회 / 노회 임원)가 위촉되다.

    * 위 영상은 53회기 노회 중 진행된 목사님 다섯 분의 은퇴식에서 후배 목회자들의 찬양, 노회 사진을 편집한 것입니다.
    오랜 기간 목회현장에서 주의 일꾼으로 사역하시고 동료, 후배, 성도들의 존경과 축하가운데 은퇴하시는 목사님들을 보며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족과 교회가 서로를 존중하며 해결의 길을 찾아, 고 장웅일 목사님의 목회와 선교의 뜻이 잘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도서관교회 담임목사와 장로, 성도, 형제, 모든 이들의 마음을 어루만지셔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역사를 목도하기를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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